[J Report] '복합리조트 = 미래 먹거리' 싱가포르, 일자리 6만 개 창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싱가포르의 랜드마크가 된 복합 리조트 마리나베이샌즈. 카지노등을 갖춘 55층 호텔 세 동을 연결한 옥상에는 최고급 수영장이 있다. [사진 마리나베이샌즈]

#1. 지난 4월 일본 국회의원 138명이 초당파 연맹을 결성했다. 여야를 떠난 이 모임의 목표는 ‘카지노 산업 합법화’다. 빠찡꼬가 많은 일본에서도 카지노는 불법이다. 의원들은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복합리조트가 일본 경제 성장의 새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쿄 중심지에 카지노 하나만 세워도 연간 8200억 엔(약 9조8000억원) 수입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왔다. 오키나와를 비롯한 지방 3개 현에서는 카지노 유치를 위한 공동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3월 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싱가포르의 카지노 성공 사례를 언급하며 “개인적으로 분명한 장점들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2.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의 주최로 ‘문화융성 및 고용창출을 위한 복합리조트 산업 발전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금기시했던 카지노 산업을 국회가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셈이다. 세미나에선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를 세울 경우 총 세수가 6조원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복지 확대에 따른 세수 부족분(10조원)의 절반 이상을 충당할 수 있는 셈이다. 서원석 경희대 관광학부 교수는 “‘강남 스타일’에 매료돼 한국을 찾은 관광객이 고작 ‘강남’ 표지판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

 동북아에 카지노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걸음마 단계라면 러시아는 훌쩍 앞서가고 있다. 러시아는 2010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 외곽 지역에 대형 리조트 6개와 카지노 12개를 포함한 대규모 카지노 단지를 건설 중이다. 베트남은 2010년 남부 지역에 카지노 설립을 허용했고, 최근에는 북부 지역에 카지노 유치를 모색하고 있다. 미적대는 정부와 달리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미 카지노 중심의 대형 복합리조트 유치에 적극적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4월 ‘중국인 전용 카지노’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관광호텔을 짓고 카지노를 유치하면 국제적인 평화안전벨트가 될 것”이라며 “중국인이 밤새도록 카지노를 하면 북한은 절대 대포를 쏜다고 위협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원군은 오송경제자유구역에 카지노 유치를 검토 중이고 대구시도 낙동강 인근 개발 사업으로 복합리조트를 검토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 샐든 애덜슨(79) 회장은 2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 카지노 설립 허가가 날 경우 샌즈 코퍼레이션 단독으로만 40억(약 4조3000억원)~60억 달러(약 6조5000억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하라 도루 오사카상업대 교수는 “일본도 복합리조트 입법을 꾸준히 추진해왔으며 미래 성장전략의 하나로 자민당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올해 안에 카지노가 허용되는 복합리조트 법률이 통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혜진(MICE 복합리조트산업발전위원회 위원장) 이화여대 교수는 “대만마저도 중국 관광객을 목표로 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며 “어느 나라가 얼마나 발 빠른 결정을 하는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카지노가 들어선 복합리조트 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싱가포르의 성공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규제가 강한 나라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04년 8월 취임한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가 이듬해 4월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리조트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흐름을 인식하고 변신할 필요성을 감지했다. 복합리조트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사회적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그러나 총리로서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 당시 싱가포르는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70% 줄어든 상태였다. 아시아 금융·무역 중심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싱가포르와 ‘지루하게 만들다’는 뜻의 단어(bore)를 섞은 ‘싱가보르(Singabore)’라는 비아냥도 등장했다. 리 총리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2010년 잇따라 개장한 리조트월드센토사, 마리나베이샌즈는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았다. 마리나베이샌즈에서만 한 해 열리는 이벤트는 평균 1600회에 달한다. 두 곳은 개장 첫해인 2010년 51억 달러(약 5조8000억원), 이듬해인 2011년에는 59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싱가포르 정부는 2곳의 복합리조트에서 2011년 1조원 이상의 세금을 거뒀다. 탄 키지압 싱가포르대 교수는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는 3만 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명분이 아닌 실용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카지노만 쳐다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복합리조트 전체의 효과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탄 키지압 교수는 “카지노는 복합리조트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의 3% 정도 비중에 불과하다”며 “그러나 카지노가 있어야 민간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양질의 공연과 행사도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복합리조트의 원조 격인 라스베이거스의 경우 리조트 고객의 80%는 관광객이며, 이 가운데 절반이 다시 라스베이거스를 찾는다. 서원석 경희대 교수는 “한국은 K팝이나 드라마·영화 등 한류 문화를 체험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콘텐트 복합리조트에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내국인 출입 허용에 따른 도박 중독에 대한 우려, 강원랜드 등 기존 업체의 반발 등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황혜진 교수는 “싱가포르의 사례처럼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2008년 4월 카지노 감독청을 설립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에게는 자유로운 카지노 입장을 허용하지만 내국인에게는 하루 24시간 입장료 8만원, 연간 입장료 160만원을 징수한다. 중독 방지를 위해 본인이 아니라 가족이나 제3자가 특정인의 카지노 출입 금지를 요청하면 카지노 입장이 불가능하다. 생활보호 대상자, 신용불량자 등 감독청이 지정한 사람도 카지노에 들어갈 수 없다. 최근 한국 시장 진출을 타진 중인 복합리조트 업체들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지원 약속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성 한국관광공사 정책사업본부장은 “숙박시설이 충분했다면 관광객 300만 명은 더 유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다른 동북아 나라와 차별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확실하게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이가혁 기자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s) 복합리조트는 호텔, 쇼핑센터, 공연장, 대규모 회의장, 전시장, 고급 레스토랑, 카지노 등이 모여 있는 대규모 시설을 일컫는다. 관광객 유치에 따른 수입 증대와 일자리 창출 등의 파급효과가 커 관광·서비스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2010년 문을 연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가 대표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