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분한 이탈리아, '음모론' 본격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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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의향이 없다"고 말하는 트라파토니 감독.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이 대 한국전에서 패배해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한 것을 두고 이탈리아 현지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또한 대표팀 선수들은 물론이고, 언론, 관료 그리고 여론까지 합세해 심판과 관련된 음모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에 2-1로 패배할 당시 연장 전반 퇴장 당했던 스트라이커 프란체스코 토티는 "이는 추잡한 사건이다. 사실상 주심은 우리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는 의도된 탈락이었다"고 말했다.

"누가 이런 일을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추측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겠으나, 분명 우리를 탈락시키고자 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이날 경기 이전에도 이탈리아는 조별 예선전 세 경기에서 5차례나 득점이 인정되지 않기도 했으며, 일련의 불리한 판정들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화요일 대 한국전의 주심을 맡은 바이론 모레노는 공동 개최국인 한국에게 페널티 킥을 주었으며, 이탈리아의 골을 한차례 인정하지 않았고, 토티 자신의 생각에는 페널티 킥을 얻어야 한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결국 수백만의 한국 축구팬들은 자국의 사상 최초 월드컵 8강 진출을 자축할 수 있었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공보장관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런 경기는 본 적이 없다. 마치 테이블에 앉아서 우리를 탈락시키기로 담합한 듯한 경기였다"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지오바니 트라파토니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은 연장전 골든골로 한국팀에 승리를 거둔 이날 경기에 대해 "몇 차례 중대한 오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수요일 선수들과 함께 귀국 준비를 하던 올해 63세의 이 노장 감독은 "우리는 커다란 비통함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팬들과, 언론 및 정치인들까지 크게 분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라파토니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 동안 논란을 더 확대시키지는 않으려 했다.

그는 "심판의 무능함 이었나, 아니면 음모였나?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탈리아 축구 협회가 이번 주 내로 월드컵 대회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트라파토니 감독은 감독직 사임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서에 이미 사인했으며 의욕도 충만하다"고 말했다.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측은 수요일 심판들 역시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며 이번 월드컵 대회의 심판진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키스 쿠퍼 피파 대변인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심은 생길 수 밖에 없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 수준은 매우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격분한 언론

하지만 이것으로 분노에 가득 찬 현지 언론들을 무마시키기는 불충분 했다. 이탈리아 신문들은 모레노 주심을 가리켜 "뚱보", "적어도 기준 체중에서 15kg은 더 나갈 것", "딱부리 눈", "미숙하다"는 등 노골적인 비난을 가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현지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은 이는 단순히 모레노 주심 개인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며, 피파와 제프 블라터 회장 등이 공동 개최국인 한국이 본선 토너먼트에서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암암리에 손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포츠 일간지 코리에르 델로 스포르트지는 수요일자 1면에 검은색 대형 활자로 "도적들"이라는 제호를 실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계속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기사는 이탈리아 대표팀이 젊은 한국 대표팀에게 고전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실제로 자국 대표팀에게 패배를 가져다 준 것은 경기장 밖에서의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우리팀이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정정 당당히 경기에서 패배를 당해야지 비겁하게 뒤통수를 맞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는 스포츠가 아니다. 비록 분노와 슬픔을 가져다 줄 지라도 스포츠 경기에서의 패배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배반행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맹렬히 비난했다.

또 다른 이탈리아 유력 스포츠 일간지 라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1면 헤드라인으로 "격분!"이라고 크게 실고, "이탈리아는 속은 기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사설을 통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승자를 결정하는 사기극에서 이탈리아팀은 설 자리가 없다"라며 "피파측은 이 추잡한 대회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유력 코리에 델라 세라지는 1면 사설을 통해 "주심과 부심이 살인청부업자처럼 이용된 더러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쫓겨났다"며 "역대 월드컵에서 특정 국가의 팀이 이렇게 부당한 취급을 당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제목 아래 "전사들이 마침내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입성했다"고 대서특필했다.

TAEJON, South Korea (CNN) / 오병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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