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원세훈 불구속기소 … 황교안 장관과 갈등설 봉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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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에는 긴박감이 감돌았다. 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와 방향이 보름째 결정이 늦춰지면서다. 전날로 선거법 공소시효 만료(6개월)까지 9일이 남으면서 민주당은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간주해 재정신청을 낼 수 있게 됐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반국가적 범죄 수사를 가로막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법무부와 검찰을 압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 장관이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가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의혹 특별수사팀장’(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인터뷰 형태로 나왔다. 검찰은 즉각 “왜곡 보도”라고 대응하며 진화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 이날 오전 채동욱 검찰총장과 수사팀 간에는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를 법무부에 보고했고 황 장관이 오후에 재가하면서 수사지휘권 발동 등의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이날 오후 4시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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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게는 국가정보원법상 9조(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와 공직선거법 85조(공무원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특별수사팀은 원 전 원장이 재임 동안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개입하도록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또 원 전 원장이 취임 후 심리정보국 확대개편을 지시했고,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등을 통해 ‘종북좌파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하라’ ‘종북좌파 세력의 사이버 선전·선동을 막으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음을 확인했다.

 특히 심리정보국은 야당 유력 정치인까지 ‘종북좌파’로 보고 선거 때마다 인터넷상에서 반대 활동을 펼쳤고, 이를 원 전 원장에게까지 보고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이 구체적으로 선거 개입을 지시했는지 ▶구체적인 선거개입 활동 내용이 원 전 원장에게 보고됐는지 등에 대한 직접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직전 국정원장을 지낸 인사를 구속수사까지 하기에는 사안이 중하지 않고 법리적으로 다툼의 소지도 적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에 정치 관련 게시글을 올리도록 직접 지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렸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되 불구속 기소해 법원에 넘기는 절충안이 나온 것이다.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지시 책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실제로 선거법 85조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례는 2010년 한국관광공사 감사였던 이모씨가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것 한 건이다. 이진한 2차장검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범죄 혐의 내용, 촉박한 공소시효 만료일(19일) 등을 감안해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 오덕현 변호사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오히려 선거개입이나 정치관여 금지를 지시했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다.

 검찰은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해서도 형법상 직권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김 전 청장은 지난해 12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를 하던 서울수서경찰서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증거를 조작하는 등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국정원 선거개입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는 “이로 인해 국민적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며 “황 장관과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동현·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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