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식 성공률 99% … 수술 분업화·단순화로 새 길 개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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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간이식팀이 지난 5일 본관 5층 외과 회의실에서 간이식 환자의 진단 사진을 보며 치료법을 논의하고 있다. 앞줄 왼쪽이 간이식팀을 이끌고 있는 서경석 교수. [김수정 기자]

지난달 24일 오전 8시30분.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팀이 박준기(가명·56·서울 용산구)씨의 간 이식수술을 준비했다. B형 간염이 있는 박씨는 술을 즐기다 간암에 걸렸다. 다행히 가까운 친척이 간 일부를 떼어 주기로 했다. 서경석 교수가 먼저 공여자의 간 65%를 뗐다. 합병증을 막기 위해 출혈을 최소화하면서 간을 절개하고 담즙이 나오는 담관과 혈관을 정확히 봉합했다. 시차를 조금 두고 이광웅 교수가 박준기씨의 암에 걸린 간을 제거했다. 오전 11시30분쯤 건강한 간을 박씨에게 이식하기 시작했다. 서 교수가 확대수술안경을 이용해 간정맥과 간문맥(간과 장을 연결하는 혈관)을 연결하자 간에 핏기가 돌았다.

미세한 간동맥과 담즙이 나오는 담도는 현미경을 이용해 이남준 교수가 이었다. 지름 2~3㎜에 그친 간동맥을 잘 이어주는 게 수술의 성공을 좌우한다. 박씨의 간 이식이 끝난 시간은 오후 3시쯤. 수술 10일 뒤 퇴원한 박씨는 현재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간 이식 후 생존율 92.5% … 선진국도 놀라

서경석 교수(오른쪽 둘째)가 최근 간이식을 받은 환자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김수정 기자]

“믿기지 않는 수술 결과.” 서울대병원 간이식팀 치료 결과에 대한 선진국 의료진의 반응이다. 서울대병원은 최근까지 간 이식술을 진행한 환자 1300여 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92.5%가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 간이식팀은 1988년 3월 외과 김수태 교수팀이 국내 첫 간이식을 성공하며 구성됐다. 이후 이건욱 교수팀을 거쳐 현재 서경석 교수팀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 교수팀은 800여 건의 생체 간이식을 했다. 서 교수는 “생체 간이식은 건강한 사람의 간 일부를 떼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으로 간이식 중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서 교수팀의 2007년 이후 간이식 성공률은 평균 약 99%에 이른다. 우리나라보다 간이식을 먼저 시작한 미국·독일의 85%보다 많이 앞선다. 장기이식은 ‘현대 의학의 꽃’이다. 장기이식 성공률은 의사와 병원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다. 특히 간암 생체이식수술 실력은 우리나라가 독보적이다. 그 중심에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가 이끄는 간이식팀이 있다. 서 교수는 “생체 간이식은 장기 기증자와 공여자 모두 건강하게 살려야 하는 고도의 의술”이라고 설명했다.

수술시간 절반 단축 … 7~10일 후면 퇴원

서울대병원 간이식팀의 높은 수술 성공률의 비결은 수술의 분업화와 단순화에 있다.

서경석 교수팀은 의료진과 코디네이터(간호사)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간이식을 할 땐 3명의 외과 전문의가 함께 수술한다. 외과 전문의 세 명의 역할이 분업화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진다.

서 교수가 공여자의 간 일부를 떼어내면 이광웅 교수가 조금 뒤 환자의 병든 간을 절제한다. 이후 서 교수가 건강한 간을 환자에게 이식한 후 간 정맥을 잇는다. 미세한 혈관인 동맥과 담도를 연결하는 건 이남준 교수 몫이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 나머지 의료진은 간이식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게 지원한다.

서 교수는 “생체 간이식은 간 공여자의 출혈 등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혈관 문합(혈관을 잇는 것)에 문제가 생기면 합병증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팀은 간 이식수술을 하면서 공여자에게 수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

특히 복잡한 혈관문합 수술을 단순화시켰다. 간 공여자에게서 떼낸 간의 단면에는 3~4개의 정맥이 있다. 서 교수는 “과거에는 이 정맥을 일일이 하나씩 이어줘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며 “이 과정에서 혈전(피떡)이 생겨 혈관을 막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팀은 여러 개 정맥을 인공혈관으로 하나로 묶은 후 한 번에 연결하는 수술법을 개발했다.

이런 간이식 시스템을 바탕으로 평균 10~12시간 소요되는 수술시간을 6~7시간으로 줄였다. 서 교수는 “수술 시간이 짧아야 간 공여자와 환자가 겪는 합병증이 적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팀 환자는 수술 후 7~10일이면 퇴원한다. 과거에는 한 달간 입원했다.

서경석 교수팀은 간 공여자의 수술 부담을 덜어주는 복강경 수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서 교수는 “배에 구멍 몇 개만 뚫고 수술기구를 넣어 진행한다.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미용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팀의 수술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대만·몽골·중국·호주는 물론 미국·독일 등 선진국에서도 발걸음이 이어진다. 서 교수는 이달 10일부터 호주에서 열리는 세계간이식학회에 특별 초청돼 강의한다.

글=황운하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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