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금강산관광·이산상봉 … 패키지 딜 성사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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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남북 당국자회담 제안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12일 서울에서 회담을 열자고 6일 오후 역제의함에 따라 6년 만의 남북 장관급 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이 이날 회담 일정과 장소를 우리 측에 일임했기 때문에 북한도 우리 측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이날 제안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정상화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과 남북관계 개선(정상화)이라는 표현을 함에 따라 일종의 패키지 딜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이 12일 회담에 응할 경우 회담 당일을 제외하곤 5일의 준비시간만 남는다. 이를 고려하면 새로운 현안을 만들기보다 현재 놓여 있는 남북 현안을 집중 논의하는 선에서 당국 간 회담은 마무리하고 추가 협의로 이어지게 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회성 회담이 아니라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 복원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5년 이상 남북 냉각기를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든 게 유동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북측 ‘관계 정상화’라는 표현까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의 남북 당국 간 회담 제의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 메모지를 꺼내고 있다. 류 장관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 남북 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장관급 회담을 오는 12일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북한에 제안했다. [뉴시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선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가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공단 입주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단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제의해 왔다. 북한 역시 이날 이 문제를 협의하자고 했다. 장마철을 앞두고 입주업체의 설비 등이 녹슬게 돼 공단이 완전 폐쇄의 길로 접어들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는 데 양측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어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는 예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 잠정폐쇄 직전 북한 측의 3월분 근로자 임금 지급 요구 등에 우리 측이 최대한 성의를 보였던 점과 북한 측이 판문점 통신선을 복원하겠다고 밝힌 건 장애물을 없앤 요소다. 다만 우리 측의 재발방지 대책 요구에 북측이 어떻게 호응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중단된 이후 뒷전으로 밀렸던 금강산 관광도 재개까지는 난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관광 시작 10년 만에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면서 중단됐다. 개성공단이 경제적 피해인 데 비해 금강산 관광은 우리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사안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 전환이 없다면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이 선행되지 않는 한 걸음을 떼기 쉽지 않다. 이 역시 북한의 호응 여부에 달렸다.

7시간 만에 제안~역제안 속도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남북관계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라면 이날 제기된 6·15공동선언과 7·4공동성명 기념행사, 이산가족 상봉 등은 새로운 이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다. 우리 정부는 일단 민간단체가 제기한 올해 6·15 공동선언 행사를 불허했다. 그러나 북한이 이날 6·15를 기해 당국자 회담을 제안한 데 정부가 12일 회담으로 응답함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더욱이 북한이 7·4공동선언에 적극적으로 나올 경우 거절할 명분도 없다. 이산가족 문제 역시 인도적 차원의 문제인 데다 이전에도 별 이견 없이 진행돼 왔던 행사여서 문제가 없을 것이란 평이다.

 북한의 전격적인 제안에 우리 정부는 현충일 휴일에도 불구하고 전광석화처럼 대응했다. 북한의 제안 4시간 만에 사실상 수용의사를 밝혔고, 이로부터 3시간 이후 회담 장소와 일정, 장관급 회담으로 역제의했다. 북한의 제안 이후 하루 이틀 검토 끝에 대응했던 이전 상황과 180도 다른 모습이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과도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통일부 주변에선 “마치 준비가 돼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우리 측이 그동안 요구해 왔던 것을 북한이 수용한 만큼 매뉴얼에 따라 대응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의 제안과 우리 측 역제안이 있기까지 비공개 접촉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전에 상당부분 조율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청와대와 정보기관 주변에선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북한과의 드러나지 않은 접촉 루트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루트가 현재까지 가동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해야 한다”며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박 대통령은 유로-아시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2002년 5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면담을 한 적도 있다. 두 사람은 당시 통일축구대회와 이산가족 상봉 등을 합의했고, 이는 지켜졌다.

인수위 시절부터 북과 접촉 소문

 약속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 이때 남북관계에서도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면서도 이명박정부와 달리 지속적으로 당국 간 대화를 제안하며 의지를 보였다. 북한 역시 대남 비방을 하면서도 한동안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한 게 아니냐는 평가다.

정용수 기자

◆7·4 남북공동성명=1972년 7월 4일 남북이 최초로 통일과 관련한 합의를 발표한 성명.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무력행사에 의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며,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다는 3대 통일원칙(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천명했다. 상호 중상비방과 무력도발의 금지, 이후락· 김영주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에도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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