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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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상아탑하면 으례 대학을 연상하기로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말의 유래는 실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구약성경 「시편」의『「솔로몬」찬가』에 처음 나온 이 말은 여인의「네크·라인」의 아름다움을 상아로 쌓은 탑 같다고 비유했던 것이다. 이 말은 19세기 중엽,「프랑스」의 문예비평가「생트·부브」에 의하여 현실도피를 비꼬는 대명사로 둔갑하였다. 그는 동시대의 시인「알프레드·드·뷔뉴」의 시를 동양의 상아조각 같은 현실도피를 일삼는 것으로 비꼼으로써 그 필명을 올렸었다.
이 말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대학의 대명사로 씌어지게 된 것은 역시 일본의 문예평론가 주천백촌의 『상아탑을 나오고서』라는 책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연구실에 파묻혀 노일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다는 어느 일본학자의 얘기를 이렇게 비꼬아었다.
문교부는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대학들이 이러한 상아탑 구실을 하지 않고 지나친 현실참여에 골몰하거나 놀고만 지낸다해서 엄부와 같은 훈계에 바쁘시다.「공부하는 대학을 만들자」거니, 대학에도 장학관을 파견하겠다는 등 전대미문의 호령이 빗발치더니, 최근에는 이른바「대학교육정상화방안」이란 것을 발표하여 박사학위의 남발을 규제하겠다느니, 학사등록증이 없는 대학졸업생을 각종 자격고시나 취직 채용시험 같은데서 몰아낼 방도를 찾겠다고 호통이 대단하시다.
그러나 과연 이런 것이 대학교육의 정상화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놀고만 지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미국의 대학안에서는 지금 대학생들의 지나친「공부전쟁」이 많은 학생들을 정신분열증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근심하는 학자까지 나오게 했다.
저명한 사회학자「데이비드·리스만」교수 같은 이는 미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환각제LSD를 마시고서라도 『빨리 생각하고, 빨리뛰고, 빨리쓰도록』강요하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정신상 장해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고, 이와 같은 학생에의 압력을 완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하고있다.
대학을 정상화하는 길은 공부와 연구를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분위기를 학원내외에 조성하는 일이요, 또 가능하다면 대학을 상아탑의 냉정속에 머무르게 하는 차원 높은 정치적 배려가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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