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예산과 한미간의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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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9연도 경제정책의 기본선에 대해서 최근 한미간에는 몇가지 중요한 이견이 노정되고 있는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유세이드」측은 지난 l2일 경제각의가 총자원예산안을 기획원에 재조정토록 반려한데 대해 불찬의 뜻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세이드」측은 69년의 농업성장율을 5%로 잡은 것은 타당한 것이며 수입수요의 억제는 불가피하고 무역외수지는 69년을 고비로 「베트남」정세변화때문에 악화되어 갈 것이라는 정세판단을 하고 있는 것같다.
한편 정부당국은 지금 추진하고 있는 고도성장·고율투자·물가안정·자력방위 등 일련의 정책은 후퇴할 수 없는 지상의 과제이기 때문에 수입수요를 이 이상 억제할수 없으며 종래의 국제수지경향을 밀고 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외자도입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수출증가를 위해 지원가능한 모든 요소를 총동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한미간의 정세판단차이는 오늘날 이나라 경제가 기본적으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음을 암시하는 반증이 될듯도 하다. 「유세이드」와 같이 정치적 고려에 구애되지 않고 경제만을 고려하는 입장에서 오늘의 경제를 논한다면, 필연적으로 안정성장과 건실한 국제수지를 위해 근본적인 국제수지개선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을 것이며, 때문에 환율현실화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도성장과 경제적 근대화라는 정치적 목표에 집착하는 정부의 입장에 선다면 성장율을 떨어뜨리고 투자율을 낮추며 그렇게 함으로써 국제수지를 건실화시킨다는 것은 정부의 위신을 크게 손상시킬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한미간의 이와 같은 견해차이가 오늘의 경제동태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와 가치전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사이에 도저히 어떤 절충이 있을수는 없는 일이거니와, 만일 그런 절충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오히려 모순을 확대시킬 우려마저 있다고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의 경제동태는 이처럼 진퇴유곡의 함정에 빠져들고있는 감이 없지않은 것이며, 고도성장과 안정쪽의 어느쪽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상당한 혼란을 겪지 않고서는 바로잡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생각된다. 「유세이드」의 생각대로 수입수요를 억제하고 이를 위해 환율을 현실화시키는 일도 파동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확정「베이스」로 이미 l3억「달러」를 초과하고있는 외채의 원화부채는 환율변경으로 하루아침에 부풀어 날 것이며 그것은 금융파동과 통화의 폭발적 팽창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입원자재의 가공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오늘의 수출정책으로 보나, 국내 원료사용율이 매우 낮다는 우리의 산업구조를 보나 환율인상이 물가를 자극할뿐 수출증대에 크게 기여할 수 없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반면 오늘의 국제수지동향으로 보아 66년부터 수출증가율보다 수입증가율이 더 빨라진 상태를 방치한다면 「아프터·베트남」의 국제수지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도 큰 문제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딜레머」를 일시에 해소시킬수 없는 것이라면 고도성장·고율투자정책을 단계적으로 후퇴시킴으로써 사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성이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성장율을 낮추면 저절로 국제수지는 개선되어 갈 것이며 물가도 상대적인 안정도를 높여갈 것이다. 국제수지의 개선과 물가의 안정을 투자수준의 인하로 도모하여 어느 정도 안정기반을 구축하고 난 다음에 환율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염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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