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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저 들판의 둥근 건물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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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 경기도 가평군의 ‘청심 워터스토리(Water Story).’ 오수 정화시설의 본래 기능을 살리면서 물을 체험하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더했다. 원 모양의 건물은 원초적 에너지인 물을 상징한다. 2인조잔디가 깔린 계단이 외벽 안에 숨어 있다. 3 1층 내부. 장치를 가동하면 실내 정원이 안개로 가득 찬다. [사진 세르지오 피로네]

때론 단순한 것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달 초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들어선 물 문화관 ‘청심 워터스토리(Water Story)’의 첫인상도 그렇다. 개울 옆 넓은 공터에 들어선 이 건물은 마치 원통형의 콘크리트 기둥을 땅 속에 푹 박았다가 쏙 하고 들어 올린 듯한 모습이다.

지름 32m, 높이 11m의 깔끔한 원통. 장식 없는 단순한 외관이 눈길을 확 사로잡는다.

 이곳은 원래 학교나 수련원 등에서 나온 오수를 정화하는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일반적인 오수 처리장은 적당히 만들어진 가건물에 안쪽에는 기계가 늘어서 있는, 사람들이 다가가기 꺼리는 혐오시설이다.

 하지만 청심국제중 등이 있는 교육단지에 세워지는 건물인 만큼 교육적 역할을 가미해보자는 것이 건축주(청심국제문화재단)의 의견이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그룹 ‘운생동’의 장윤규(49·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신창훈(44) 공동대표는 고민 끝에 오수 처리장의 본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물에 관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문화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는 ‘원’이다. 근원적이고 순수한 결정체로서의 물을 상징한다. 외관뿐 아니라 내부에도 원형 책상, 원형 조명 등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건물 주변을 작은 호수로 둘러싸고 원통형의 외벽을 계단처럼 각이 지게 잘라 로비와 입구를 만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높은 천장에서 아래쪽 풀을 향해 비가 오듯 물이 떨어진다. 아이들은 대여한 우비와 장화를 신고 풀 안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논다.

 1층 한쪽에는 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정원이 있다. ‘워크 인 포그(Walk in Fog·안개 속을 걷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공간에는 이끼와 수생식물 등이 심어져 있다. 장치를 가동하면 정원 내부가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찬다. 나무 판을 밟으며 수목원을 걸으니 안개가 자욱이 낀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기분이다.

 장 교수와 신 대표는 서울 강남의 ‘예화랑’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서교동 ‘옐로우스톤’으로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베테랑 건축가다. 그러나 ‘청심 워터스토리’의 설계는 이들에게도 도전적인 작업이었다.

문화시설의 경우 건축가의 역할은 보통 외관과 내부의 대략적인 공간을 구획하는 것에 그친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화관 내부의 모든 설비와 콘텐트를 건축가가 책임졌다. 1층의 체험공간은 물론 2층의 도서관과 쉼터, 인터랙티브 영상을 활용한 전시관까지 모두 건축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장 교수는 “갤러리와 도서관, 놀이공원, 수목원 등을 동시에 설계하는 느낌이었다.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해어(深海魚) 그림이 그려진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쾨쾨한 냄새가 난다. 건물의 원래 용도인 오수 정화시설이 들어선 공간이다. 기계 사이사이로 길을 내고 주변을 갈대와 대나무로 장식해 방문객들이 시설 내부를 돌아보며 정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 난 유리창을 통해서는 오수가 흘러가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예상 외로 좋아하는 공간이다.

 계단을 다시 올라 옥상으로 나오면 사방이 탁 트인 야외쉼터가 있다. 맑은 바람과 함께 인근의 산과 개울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다. 신 대표는 “건물 내·외부를 오가는 건축적 체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물과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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