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의의 무대|신극60년 상반기연극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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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극60년의 요란스런「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막을 올린 금년도 상반기의 연극무대는 맥풀린 관중의 박수 소리와 연극인들의 실의 속에 막을 내렸다. 국립극단과 극단「드라머·센터」등 몇 개 극단을 제외하고는 신협을 비롯한 14개 극단의 금년상반기 공연실적은 모두의무에 쫓기듯 한차례씩 막을 올린 것뿐이다. 양으로는 예년수준을 채웠다 하지만 질에 있어서는 창작극과 번역극의 비율을 바꿔놓았다는 것뿐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는게 연극계의 평이다. 상반기 연극을 조목별로 훑어보면서 연극계의 문제점을 따져 보자.

<흥행>
1주일간 하루 2회 공연에 평균 6천명 꼴로 관객이 동원됐다. 예년보다 1천명쯤 많은 수준. 가교의「몽땅 털어놓읍시다」(이근삼작)가 5일 동안 기록적인 1만명선을 깨뜨렸고 성질은 좀 다르지만 국립극단의 가면극「산대놀이」(김경옥 연출)가 4일 동안 9천2백명의 밀도 높은 수준이었고 다음엔 신극60년을 기념한 각 극단합동공연인「그래도 막은 오른다」가 8천8백 여명으로3위.
반면에「타인의 머리」를 들고 나온 동인은 매표구에서 한 장도 팔지 못한 날이 있을 정도의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6일 동안 2천3백명의 초라한 관중을 맞아 들였다.
그러나 이것은 무료 입장자가 유료 입장보다 2배나되는 우리의 관객현실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좋은 작품에 관중이 몰린다』는 정세은 금년에 들어 많이 퇴색되어 연극인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작품>
자신 있게 추켜 줄 작품은 거의 없다시피.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국립극단의「환절기」(오태석 작 임영웅 연출)가 얼마간의 주목을 끌었다.
금년에 두드러졌던 것은 번역극과 창작극의 판도가 뒤바뀐 것. 예년에 4대1로 번역극이 우세하던 것이 올해는 반대로 되었다.
기성극작가의 활동은 눈에 띄지 않았고 신인으로 오태석의「환절기」김승규의「동굴」정하연의「무지개 쓰러지다」가 있었다. 각색 작품으로는 문단의 중진 안수길의「북간도」 및 신인 방형웅의「분례기」가 대조를 이루었으나 원작에 너무 집착하여 무대에 올려 진희 곡으로서는 원작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 같다.
재미로 봐서는 꽤 성공했던 번역극「자유」의「피크닉작전」「산하」의「슬로안씨를 즐겁게 하자」가 예상보다 부진한 관객을 동원한 것은 갈피 잡기 어려운 연극계의 장래를 말해준다.

<연출·연기>
언제부터인가 배우와 연기 인이 구별되어 불려지고 있다. 연극배우가 배우라는 이름을 영화에 빼앗기고 연기 인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옮겨갔다.
연극배우는 영화로 가기 위한 디딤돌로 타락되는 실정.「동인」의「멤버」인 오모군이 TV녹화를 핑계로 무대에서 도망친일이 단적인 예다.『무대에 살고 무대에서 죽는다』는 전통적인 연기 인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대사 하나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 공연 중에 막을 내려 연출자가 땅을 치고 울었다는 얘기는 뭐라 하든 연극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이중에서 백성희의 꾸준한 노력이 평가받으며「배간도」에서 강효실이 오랜「슬럼프」를 벗어난 것이 대견한 일이다.
신인 급으로「동인」의고 강자가 두각을 나타냈으나 앞으로의 연기가 문제다.
연출에서는「드라머·센터」의 유인형이 꾸준히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미술장치에서 장종선이 희곡을 분석할 능력을 지닌 채창의 성을 굳건히 쌓고 있을 뿐 새로운 얼굴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극계의 저조한 부진 상온은 여러 가지로 이유를 댈 수 있고 원인을 캘 수 있다.
먼저 외적인 제약들로 상설 무대가 없다는 것. 국립극장과「드라머·센터」가 있지만 연극활동에는 워낙 모자란다. 국립극장은 연극외로 많이 빼앗기고 있고 남는 무대를 할당 분배하고 자연극 협회는 애를 먹는다. 보다 심각한 것은 내적인 결함이다.
연극 할 수 있는 틀이 잡혀있지 않았고 다급한 당면 문제로「창작극」과「연기자」의 빈곤이다.
지난 2월 연극인들은 한자리에 모여 창작극의 발굴을 위해 창작극「풀」을 만들고 연기 인을 키울 명실 장부 한 연극학교를 만들겠다고 결의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인 모임이나 행동이 뒤따르지 못하고 결의로써만 끝난 느낌이다.
연극인의 참다운 자세가 지금 만큼 요구되는 때가 없는 것 같다. 연극은 무대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관중이 무엇이라 하든 스스로 창조의 기쁨을 가슴 저리게 느끼게 되어야 연극이 되살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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