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과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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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과 월맹의 신경전은「복싱」을 연상하게한다. 서로 팔도 한번 뻗어 보고, 슬쩍 상대방의 뒤통수도 건드려 보고, 뒤로 한 발짝 물러나 보기도 하고, 멋 적게 싱긋 웃어도 보이며「폼」만 잡는다. 벌써 열흘째나 그런 탐색전이 계속됐다. 성급한 관객이라면『집어 치우라!』고 역정을 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협상이란「복싱」과는 또 다르다. 굴비를 흥정하는식으로 얼렁뚱땅할수는 없는 일이다.
그 통에 이름을 날린 몇몇나라의 수도가 있다. 「캄보디아」의 「프놈펜」,「라오스」의「브양트얀」, 「버마」의 「랭군」,「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 인도의 「뉴델리」, 「스위스」의 「제네바」, 「프랑스」의 「파리」, 소련 「모스크바」….
무명도시들이야 아니지만, 워낙 이런 국제적인 장소로 각광을 받고 나면, 일약 「세계의 도시」로 승격되기때문에 어느나라나 한번 군침이 돌만도하다.
가령 우리나라가 몇백만불의 선전비를 쓴들 경기도의 이름없는 벽촌을 오늘의 판문점으로 만들수 있겠는가.
「파리」니 「모스크바」는 분위기로 보아 자초 「케이스」인 것같은 인상이다. 그쯤되면 넉살도 좋다. 김칫국부터 마시며, 은근히 역선전을 터뜨리는 것이다. 「미·월맹협상」은 가령 『한 외교소식통에 의하면 「파리」에서 열린다』고 능청을 부리는 것이다. 잠시나마 그쪽에 세계의 눈길이 쏠리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하긴 「존슨」대통령이 「그라스보로」에서 「코시긴」(소련수상)을 만났을때, 그곳 촌민들은 외국특파원들에게 숙식일체를 무료봉사하겠다는 제의까지 했었다.
미국과 월맹은 정작 「링」에도 오르기전에 탐색전부터하는 꼴이 되었다. 월맹이 굳이 「프놈펜」을 고집하는데는 까닭이있다.
협상을 하게되면 미국은 외교공관을 갖고있지 않기때문에 호주를 통하지않고는 공식접촉을 할수가 없다.
더구나 「캄보디아」는 월맹의 입장을 두둔하는 편이다. 그쯤되면 미국은 꿇리는 셈이 된다.
「브양트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네바」의 경우는 월맹이 미국과의협상을 본질적으로 수락한 셈이된다. 월맹은 아직도 협상을 하기위한 예비회담을 하자는 것이지, 협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월맹은 무기없는 「테이블」에서마저 신경을 곤두세워야할 처지이다. 관객은 냉수라도 마셔가며 그담판을 지켜보아야 할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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