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특종」(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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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건의 홍수속에서 자고깨는 기자의 머리속에서도 영원히 사라지지않는 몇가지 사건이있다. UPI의 전신인 TNS에서 38년간 외국특파윈으로 세계를 날아다니다가 현재 미국의 「허스트·헤들라인·서비스」 통신에 이르기까지40년을 「뉴스」속에 묻혀온 「제임즈·L·킬갠런」 기자의 그동안 취재한 수많은 특종사건 중에서도 23년이지난 오늘까지 머리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사건이 있다.
1945년5월7일 「프랑스」 「랭」시에서 당시 독일육군참무총장 「알프레트·요들」 장군이 「나찌」독일의 『무조건』 항복문서에 조인함으로써 「유럽」에서의 2차대전을 종결시킨 광경을 「킬갤런」 기자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엄숙한 역사의 시각은 45년5윌7일 새벽2시41분. 당시 「킬갤런」기자는 미국의 INS통신을 대표하여 AP와UP의 특파원 각 한사람과 함께 「나찌」의 항복조인에 참석, 취재한 미국기자3명중의 한사람 이었다.
조인식은 「아이젠하워」장군의 전방사령본부의 상황실에서 진행되었다. 「아이크」의 전방사령본부건물은 「랭」시의 전소년직업기술학교로 사용되어온 3층붉은 벽돌집 이었다.
조인식 취재차 대기하고있던 기자들은 새벽2시15분 공보장교의 통보를받고 곧 조인실로 안내되었다.
높은 천장에 3피트 평방쯤되는 상황실은 눈부실 정도로 조명되어있었다. 벽에는 갖가지 「차트」와 지도가 걸려있고 거기엔 연합군 부대와 보급부대, 공군기지, 작전상황, 사상자수등이 표시되어있었다. 새벽2시30분, 연합군장군과 제독이 제복차림으로 들어와 길고 검은 「테이블」의 한쪽에 있었다. 식장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이윽고 2시35분 녹회색의 제복을 입은 「요들」장군이 독일군해군참모총장 「게으크·폰·프리드 부르크」와 자신의 부관「프리드리히·W·옥세니우스」를 데리고 들어섰다.
마르고 큰키, 벗겨진 회색 머리, 긴다란 코에 불그스레한 귀와 날카로운 표정을 가진 「요들」은 활발한 보조로 「테이블」 앞에서 연합군측 장군들에게 경례했다. 연합군측장군들은 형식적으로 응례했다. 그러자 세명의 독일인은 연합군측을 마주보고 「테이블」에 앉았다.
억세게 생긴 독일 해군참모총장 「프리드부르크」는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그는 불안을 감추기 위함인지 「테이블」위의 물을 한잔 따라마셨다.
바로 눈앞의 이들 독일장군들이 얼마전 까지만해도 「히틀러」의 명령대로 그에게 온갖 충성을 다바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더우기 「요들」이야말로 전쟁중 「히틀러」와긴밀한 관계를 가졌고 미국과 영국 두나라의 몰살 10개항 계획을 작성하고 44년 「히틀러」암살음모 적발때 부상까지한 위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승부의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깊은 고요가 이 상황실을 감싸고있었다.이마당은 연합군측 조건대로 항복에 조인하는 곳인 것이다.
연합군측의 「스미드」 장군이 「테이블」 건너의 「요들」에게 『여기두가지문서에 서명하시오」라고 말했다. 연합국파견군 최고사령부 정보책임자 「K·W·D·스트롱」 소장이 독일어로 통역, 각4부로 된 두가지 문서의 서명할자리를 가리켰다.
「요들」은 한순간 잠자코 있더니 「펜」을 집었다. 벗겨진 그의 머리엔 강렬한 빛이 비췄다. 죽은듯이 무표정한 「요들」이 서명하는 동안 「뉴스·카메라」의 기계소리밖에는 아무소리도 없었다.
서명된 서류가 연합군측에 되돌려지자, 연합국 미·영·불 세나라 대표들도 각각 서명했다. 새벽2시41분 이었다.
조인식은 끝났다. 「요들」은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에 의면회를 요청했다.허가를받은 「요들」 일행이 호위를 받아 「아이크」 의방에 들어가 발뒤꿈치를 콱치며 경례하자, 「아이크」는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이 서명한 문서의 뜻을 알겠소?』 의외로 냉정한 태도에 당황한 「요들」은 『네』 했다. 「아이크」는 만일 항복조건이 침범되면 「요들」 이「책임」져야한다고 말하고는 「요들」 일행을 돌려보냈다. 문이 닫히자 「아이크」 는 싱긋이 웃었고, 이윽고 동료들과 축하의 악수를 나누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한 기자들은 연합국의 정식발표가 있기까지는 보도 않기로 당국과 약속했으나 일단기사는 타전하고 보드금지시간이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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