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찬호 칼럼

박 대통령, 진짜 인재 모아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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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직선제 개헌을 둘러싸고 여야가 강경 대치했던 전두환 정권의 후반기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김용갑 전 의원은 신한민주당이 대전에서 연 개헌촉구 대회장에 몰래 들어갔다. 선글라스를 끼긴 했지만 2만 참석자들이 그를 알아봤다면 무슨 횡액을 당했을지 몰랐다. 김 전 의원은 그렇게 개헌을 요구하는 밑바닥 민심을 체감했다. 청와대로 돌아온 그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개헌을 해야 합니더”라고 잘라 말했다. ‘개헌’의 ‘개’자도 싫어했던 대통령은 짜증부터 냈다. 하지만 그는 “야당 개헌 행사에 가보니 민심이 거기 가있진 않았지만 여당엔 더더욱 와있지 않았심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행사장까지 가봤나?”라고 물은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다 “총리 불러”라고 지시했다. 군사정권이 개헌 공론화 요구에 응하는 순간이었다.

 TV 뉴스 오프닝마다 대통령 동정을 보도했던 ‘땡전 뉴스’의 악습이 없어진 것에도 사연이 있었다. “각하, ‘땡전 뉴스’란 말 들어보셨심니까? 국민이 ‘땡전’만 나오면 테레비 꺼버립니더”라고 직보했기 때문이다. 수석 회의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경제수석의 보고에 “그게 아닌데”라고 태클을 걸었다. 화가 난 대통령이 그를 추궁했다. “다른 수석들은 다 잘된다는데 와 니만 늘 ‘문제가 있심더’ 하노?” 김 전 의원은 대답했다. “저는 각하의 눈과 귀입니다. 각하가 제 직언을 막으면 각하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겁니다.” 대통령은 파안대소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2008년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러면서 “직언을 꺼리는 군주처럼 위험한 건 없다. 그게 내가 민정수석 하면서 대통령에게 사표 쓸 각오로 직언한 이유”라고 말했다.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꼭 필요한 얘기다.

 5공, 6공 청와대에도 할 말을 하는 수석들은 있었다. 정통성 콤플렉스가 컸던 대통령들이라 수석들의 쓴소리를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했을 거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대통령 집무실에 뛰어들어 직언한 수석들의 자세는 평가받아야 한다. 민주화 26년이 된 요즘, 청와대에서 그런 참모들을 찾아볼 수 없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홍보수석은 기자들 전화를 받지 않았고 비서실장은 미국발 대형사고 소식을 듣고서도 변변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의 ‘불통 인사’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한 민정수석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자리를 노리는 게 인생 목표라도 된 것처럼 경력 관리를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어쩌다 대통령 눈에 띄어 청와대를 에워싼 것 같다. 어차피 터질 참사가 안보 긴급상황 또는 경제위기 아니라 3류 성추문이란 걸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청와대의 인적 쇄신은 불가피하다. ‘배신당하기 싫으니 믿을 수 있는 자만 쓰겠다’는 박 대통령의 트라우마는 윤창중 전 대변인을 자르듯 속시원히 날려버려야 한다. 똑똑하고, 소신 있고, 쓴소리 할 줄 아는 인재를 왜 모으지 못하는가.

 동아시아의 골칫덩어리가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2007년 ‘배가 아파 총리직 못해 먹겠다’며 물러났다가 5년 만에 복귀했지만 그는 더 이상 ‘찌질이 리더’가 아니다. 돈 풀기와 엔저로 경제 회생의 불씨를 살리더니 11년 만에 북·일 대화에 나서 한·미 양국의 허를 찔렀다. 잘나가는 아베 뒤엔 와신상담 5년 동안 모은 무서운 인재들이 있다. 아베가 이번에 북한에 보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는 초선 의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를 30년 섬긴 끝에 총리로 만들어낸 일본판 칼 로브다. 아베의 비서실장 격인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 참여(총리 자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도 소문난 지략가들이다. 아베는 이들을 업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일거에 되찾을 기세다. 박 대통령은 그에 맞설 인재들을 얼마나 확보했나.

강찬호 정치 에디터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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