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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학 신현실주의 융합의 지식인 케네스 월츠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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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현대 국제정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던 케네스 월츠(사진) 교수. 컬럼비아대 교수와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가 12일 타계했음이 뒤늦게 국내에 알려졌다. 향년 89세인 그의 죽음은 개인적이지만 보편적 울림이 있다.

 그는 국제정치의 무정부적 상태와 그에 따른 국제관계의 불확실성, 배신의 가능성, 물질적 힘의 균형을 강조한 이른바 ‘신현실주의’(neorealism) 이론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작 『인간, 국가, 전쟁』(1959)과 『국제정치이론』(1979)은 세월의 시침을 훌쩍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월츠의 삶과 연구의 고갱이는 활자에 담긴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컨대 그는 융합적 지식인이었다. 그의 이론적 바탕에는 철학과 경제학, 문학과 사회학이 엉기어 있다. 그는 과학철학과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문학과 작문을 끊임없이 탐색했다.

 이보다 더 큰 울림은 자기 성찰적 태도다. 그의 신현실주의는 종종 ‘냉전시대의 붕괴를 내다보지 못한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도둑처럼 찾아온 냉전의 붕괴를 예측한 국제정치학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은 차치하자. 월츠가 다른 이론가들과 달랐던 점은 자기 이론의 한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던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이런 월츠의 자기 반성적 태도야말로 역설적으로 그가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이유일 것이다. 수십 년을 쏟아 부은 연구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교조적으로 자신의 이론과 신념을 끝까지 밀고 가는 연구자나 정치인들에게 ‘상생’의 출발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환기시킨다.

 월츠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정치는 오직 국가 간의 힘의 차이와 배분이 전부다’라는 식으로 그의 이론은 단순화되곤 한다. 이런 일차원적 방정식은 힘(군사력)의 확장이라는 현실정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월츠에 대한 오독이다. 그는 현실주의자다. 이것의 핵심은 신중함(prudence)이다. 신중함이란 힘의 과도한 사용에 대한 ‘절제’다.

 월츠는 이런 논리를 행동으로도 주창했다. 일찍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도 반대했다. 동료 현실주의 학자들과 함께 뉴욕타임스에 광고까지 내며 반대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단순히 국제정치에서 힘의 중요성이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는 것이 그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일 것이다. 그의 통찰은 전쟁의 짙은 먹장구름이 깔려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엄연한 진행형이다.

은용수 교수(인천대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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