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근시한적 정책|미·북괴 판문점회담을 주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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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판문점 회담이 한국 땅에서 한국의 참석 없이 미국과 북괴간에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미국측은 판문점 회담이 정전협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유엔」군사령부와 북괴간의 회담
이며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업저버」자격으로 참석해 온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양측수석대표회담이므로 한국은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공적으로 「푸에블로」사건이나 북괴무장공비 서울침입사건을 동등하게 취급한다고 하지만 과거의 전통적 정책으로 봐서 인질로 잡혀 있는 「푸」호 승무원을 하루 속히 송
환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기 때문에 거기에 보다 더 복잡한 양상을 지닌 북괴공비남침사건을
겹쳐 한국대표까지 참석시켜 얘기를 진행하면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계산인 것 같다.
우리의 주장은 판문점 회담이 한국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한국 땅에서 토의하고 거기에 한국이 절대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국이기 때문에 거기에 참가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실
질적이 발언권을 가져야 될 것이며 이 회의과정에서「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순진한」미국
이 혹시나 공산측의 계략에 넘어가거나 또는 승무원 인수에 너무 초조한 나머지 모든 체면
과 위신을 잃어버림으로써 결국은 공산당의 자의를 조장하고 앞으로 더 많은 불법나포사건
을 일으키고 또 대기시켜 놓은 1만수천명의 무장공비를 계속 남침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
다. 물론 미국으로 봐서는 83명의 생명이 귀중한 것이고 우리 역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
에게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점에 있어서 미국인들과 같은 마음이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그에 지지 않을 수의 미군병사들의 피가 휴전선 남방에서 해마다
북괴무장공격에 의해 흘려지고 있고 그 이상의 한국의 젊은 용사들이 생명을 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야 여하튼 북괴는 그러한 미국과의 단독회담을 통해서 좋든 나쁘든
그들의 국제적 문제성 또는 지위를 향상시키고 그와 반대로 한국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어두
워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이것은 김일성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
가.

<북괴주장타당화>
그리고 또한 우리의 전망으로는 그러한 단독비밀회담을 통해서 「푸」호 승무원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막상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무장공비남침사건은 과거와 같은 판문
점회담의 재판의 희생물이 되어 흐지부지되고 말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미국은 물론 우리와는 달리 전세계에 걸친 국가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반면 우리는 한국,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하더라도 극동에 국한된 이해관계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미국과는 그 시야와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미국의 입장에 서서 볼 때에도 이번의 판문점 단독비밀회담이란 너무나 근시안적인 천견단려한 정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우기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이 회담 결과로 승무원들이 석방된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돌려받기 위해서 미국은 「러스크」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영해침범가능성의 인정이라는
중대한 모욕적인 굴욕을 참아야 했을 것이며 그것은 또한 결과적으로 과거의 모든 북괴 및
소련의 주장을 타당화 시켜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판문점>
또 한편으로는 북괴의 무장공비남침사건이란 명명백백한 침략행위도 「푸에블로」호 사건
와중에서 그 본질이 희미해질 가능성 마저 없지 않다.
그것은 또 앞으로 한국해역 및 휴전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있어서 미국과 우리의 입장이 회의적인 눈초리로 보여질 염려도 없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서 우리는 판문점이란 존재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또한 우리의 대표를「업저버」자격으로라도 계속 파견할 것인가, 또는 우리가 상금도 거부해 오던 휴전협정에 대한 조인을 해야 할 것인가의 여러 문제를 심각히 재검토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간에 우리는 모든 일을 정치·경제는 물론 군사면에 있어서도 스스로의 힘을 배양함으로써 스스로가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국민이 되어야
하겠고 그러한 노력이 결실이 있을 후일에는 판문점이 우리의 지나간 고민과 분노와 오욕된
과거의 고적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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