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파워리더 (34) 김영돈 '원봉'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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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와 냉온수기 업체 김영돈 대표는 “기존엔 주문자상표부착생산에 주력했지만 앞으로는 독자 브랜드로 국내 정수기와 냉온수기 시장의 판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사진=박종근 기자]

동양매직·노비타·LG·교원·현대·에넥스·쿠쿠 정수기의 공통점은? 바로 ㈜원봉이 만들었던 제품이라는 것이다. 원봉은 일반인에겐 생소한 기업이지만 과거 국내 정수기 업체 대부분의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했다.

 경기도 김포시 누산리에 자리잡은 원봉 본사 겸 공장에선 직원들이 제품이 담긴 박스를 쉴 새 없이 대형 트럭에 옮겨싣고 있었다. 수출 물량을 대기 위해서다. 이 회사 김영돈(61) 대표는 “해외로 수출하는 정수기·냉온수기 물량은 국내에서 우리가 1위고 생산물량도 우리가 가장 많다”고 강조했다. 원봉은 지난해 매출 800억원 중 71%를 해외 업체에 대한 OEM 수출로 벌었다. 일본으로 가는 것이 49%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중동·유럽연합(EU)·러시아 등 60여 개국에 고루 수출한다. 엔저로 인한 타격이 없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다행히 지난해에 원화 고정환율로 계약조건을 바꿔 요즘은 오히려 그 덕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등 저가에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우리는 품질과 신뢰성으로 차별화한 덕에 계약조건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수기 시장은 도우미가 방문해 관리해 주는 렌털 위주의 국내 시장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완제품을 택배로 보내주고, 필터도 스스로 갈아야 하는 형태라 잔고장이 덜하고, 서비스(AS)를 덜해도 되는 제품이 살아남는다. 김 대표는 “그래서 맥주로 유명한 기린 같은 바이어가 원봉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회사 설립 2년 뒤인 1993년부터 일본 시장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지만 수출 물꼬는 2006년에야 터졌다. 거래처를 확보하고도 실제 납품계약을 맺기까지 3년이 더 걸렸다. 식품회사도 아닌데 일본 바이어들은 점검을 나와 작업대에서 채취한 시료로 세균 배양까지 했다. 김 대표는 “이 기준을 맞추느라 회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매출액의 3.7~3.8%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일단 품질을 인정받아 일본을 뚫자 나머지 시장 공략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회고다.

 비교적 순탄히 크던 회사는 2008년 키코 사태로 한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38억원의 순손실을 떠앉아야 했다. 그래도 외부 차입금 없이 사업을 한 덕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고비를 넘겼다. 거래업체에 주던 어음을 없애고 98년부터 현금 결제를 해준 것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지난해 김 대표는 올 4월부터 국내 OEM 사업을 중단한다는 큰 결단을 내렸다. 그는 “남 잘되게 해주는 서포터(지원자)로는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출은 OEM으로 계속하되 국내 시장에선 자체 브랜드로 판을 바꿔보겠다는 결심이다. ‘루헨스’라는 독자 브랜드로 국내 렌털·소비자 시장에 뛰어들었다. 모델 송중기와 계약을 했다. 김 대표는 “2류 모델을 쓰면 2류 제품이라고 인식할까 봐 과감한 마케팅을 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섬유 수출을 담당하던 87년 폐업한 냉온수기 생산업체의 설비를 싸게 인수한 것이 정수기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됐다. 91년부터 원봉을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수출 현장에서 익힌 실무가 해외 바이어 공략의 큰 자산이 됐다”며 웃었다.

글=최지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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