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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선생 영전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동명 선생.
지금 막 「늘 봄」 선생의 장례식을 치른지 하루가 지났읍니다. 슬픔에 젖은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선생이 또 그 뒤를 따르셨다 하오니 이 어이한 일이 옵니까?
그간 너무 격조하여 한번 찾아 뵈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제 방문마저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읍니다.
저 초록빛 동해 기슭에서 그 몸이 나시던 때부터 오묘한 시를 줄곧 써오시던 선생님.
어이 그리 말없이 기약없는 곳으로 사라져 가시나이까. 선생이 타시던 한밤의 거문고는 이 민족의 가슴에서 아직도 그 가락을 끊이지 않았거늘. 이제 거문고 소리와 그 정겹던 파초 잎새도 다 물리치시고 영영 이 생에서 발을 끊으시었다니 이것이 참말입니까.
선생이시어. 몽매에 그리던 38선 너머 그 동해 바다도 목놓아 이 밤을 울고 있음을 아십니까. 온후하시나 불의를 참지 못하시던 선생은 때로는 시를 쓰시던 붓을 놓으시고 의회 단상에서 민족을 부르고 통일을 염원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기도 한두번이 아니었읍니다. 선생은 그후 현실에서 소외된 고독한 세계에서 사랑하는 문학과 민족의 꿈을 가슴에 안으신 채 조용한 며해를 지나셨읍니다.
봄 동산의 미소 같은 선생의 품위와 인간성을 차마 어떻게 지금 우리가 이별할 수 있으리까? 아무도 몰래 밝히셨던 그 촛불을 그다지도 무정히 꺼버리시고 홀로 어둠에 묻히시고 말았습니까. 선생이시어. 얼마나 우리는 못다한 이야기에 가슴이 벅찼으며 못다 기록한 시구에 미련이 쌓였었읍니까?
쌓인 정을, 풀지 못한 서러운 후회와 애통함이 말없는 선생의 침묵에 더 큰 슬픔의 그늘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조용한 호수.>
그 뱃전에 고요히 부서져버린 애닮은 영혼의 시를 우리는 지금 읊고 노래하며 웁니다.
조용히 떠나시는 선생이시어. 이제 고달픈 그 생을 쉬시고 요단강 저편에 영생의 배를 저어 가소서. 모윤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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