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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사법시험 존치,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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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최근 법조계를 중심으로 사법시험을 존치시키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17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을 유지함으로써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병존시키자는 것이다. 존치론자들은 “서민층이 법조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막아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인 양성 통로를 두 개로 분산시킬 경우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양쪽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돈 없어도 법조인 되는 길 열어둬야 한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로스쿨에서만 판·검사, 변호사를 배출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사법시험 폐지 논거는 로스쿨에서도 장학금 확대로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법시험 준비 역시 적지 않은 돈이 드는 상황에서 기회 균등이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의사 같은 전문직에도 우회 통로가 없는데 굳이 사법시험이란 또 다른 길이 필요한가, 그리고 사법시험을 존치하면 로스쿨 체제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등으로 요약된다. 마지막 논거 하나만 그나마 읍소로서의 설득력이 있을 뿐 나머지는 빈약한 억지에 불과하다.

 대학원 체제인 로스쿨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학부를 졸업해야 하고, 그것도 명문대 학부를 졸업한 자라야 가능하다. 서민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1억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출을 받아 공부한다고 해도 그 빚이 어디로 가겠는가. 심리적 불균등과 직업적 포부의 좌절을 로스쿨로 메우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로스쿨에 내야 하는 고액의 학비를 아르바이트라도 해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사법시험 비용과 비교하는 건 견강부회의 극치다. 사법시험 폐지론자들은 지금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 중에는 로스쿨 체제하에선 법조계 진출을 꿈도 못 꾸었을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임상시험을 해야만 하는 직업과 칠판과 책만 있어도 되는 직종은 구분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전문 자격증 가운데 응시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소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법조 기둥이 특별히 응시 자격 제한이 없는 사법시험을 통해 잘 배출돼 오지 않았는가. 의사도 의과대학에서 양성되는데, 왜 변호사만 대학원 체제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법시험 폐지와 그 대안으로 로스쿨 도입이 주장됐을 당시 명분은 대학의 서열화 방지, 국민에 대한 양질의 법률서비스, 법학 교육의 정상화, 고시낭인 양산으로 인한 인적 자원의 왜곡 방지였다. 이제 로스쿨 2기 변호사를 배출한 시점에서 보면 이 모든 장밋빛 청사진은 허구요, 심하게 말하면 사기극임이 드러났다. 변호사시험은 치르기도 전에 사전에 합격률을 보장해 준다. 75% 이상으로 아예 못박고 있다. 작년 경쟁률은 1.1 대 1이었고, 올해는 1.3 대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은 합격률을 더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본인에게도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법규정에 따라 누가, 왜 법원과 검찰로 임용되는지 모른다.

 객관적으로 아는 건 출신 학부와 그 부모와 집안 배경이다. 지방대와 비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의 수도권 로스쿨 진학과 법원, 검찰, 대형로펌 진출은 사법시험 출신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양질의 법률서비스에 관한 논의가 로스쿨 측이나 로스쿨 도입을 앞장서서 주창했던 일부 시민단체의 입에서 쏙 들어간 지 이미 오래다.

 과거 우리는 “돈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황금률을 신뢰했다. 사법시험 폐지는 “돈과 백(배경)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돈과 백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 활짝 열린다는 걸 의미한다. 무능, 단견, 무책임, 그리고 소수의 탐욕이 빚어낼 이 참사를 막기 위해 적어도 로스쿨과 사법시험이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길을 터놓아야 한다.

이 호 선 국민대 법대 교수

◆ 사시 폐해 없애자는 로스쿨 취지에 역행한다

김용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의 성공적 정착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큰 반면 적지 않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최근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사법시험 존치 주장이다. 이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다각도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로스쿨 제도는 국가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숙의해 도입한 새로운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통한 엘리트 법조인 양성 체제와의 결별을 전제로 한다. 로스쿨 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사법연수원 기수 문화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고, 특권의식으로부터 탈피해 봉사하는 법조인상을 확립할 수 있다. 나아가 법조 비리나 전관예우에 따른 제반 문제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법률 문화를 한 단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입법자의 결정과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에 정면으로 역행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로스쿨 제도는 사법시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사법시험을 존치시킬 경우 그동안 새로운 양성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투입했던 제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훼손되고, 로스쿨 운영에 일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아울러 로스쿨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 변호사가 되는 데 유리하다. 로스쿨 시스템은 기존의 사법시험을 통한 법조인 양성 시스템보다 법치주의 확산이란 점에서 비교우위에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갖춘 학부 전공자들이 판사, 검사, 변호사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법조삼륜(法曹三輪)을 넘어서서 다양한 직역으로의 진출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로스쿨과 사법시험의 이원적 통로를 마련하면 국민은 보다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 어디인지 선택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로스쿨과 사법시험이라는 이원적 양성 통로를 만들어놓으면 뿌리가 약한 로스쿨은 형해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 사법시험을 통한 사법연수원 출신과 로스쿨 출신 간에 자존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돼 법조계 내부의 갈등이 증폭될 소지가 많게 된다.

 로스쿨 제도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로스쿨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서민층에게 진입 장벽으로 기능할 것이란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수업료 등 학비가 비교적 저렴한 국립대 로스쿨을 다니면서 얼마든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보장돼 있다. 적은 비용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로스쿨의 특별전형제도와 장학제도를 개선해 나가면 서민층의 법조 직역 진출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 오히려 사법시험이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용이한 일일 수도 있다.

 로스쿨 역시 100%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로스쿨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제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적극적으로 수용해 제도 개선을 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향후 법조인 양성 시스템의 올바른 정책 방향은 변증법적 관점에서 사법시험의 긍정적 측면을 로스쿨 체제에 접목해 로스쿨의 위상 변화 를 도모하는 데 있다. 제도에 일부 문제점이 있다고 해서 기본 틀을 허물려는 것은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 용 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