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확립의 역사적 사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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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앞서 신민당에 의한 국회소집요구가 유산된 후 양당에 의한 공동소집요구가 모색되었으나 국회의장단의 거취문제로 끝내 이견의 안협을 못 본채 이 역시 유산되고 말았다. 이리하여 삭년내 연초가 되면 반드시 열리기로 되어있던 연두국회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우리국회는 언제 다시 열리리라는 기약도 없이 장기휴회상태에 들어섰다.
작년 말 정기국회가 「28파동」이라는 이름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폐회된 후 우리 나라 의회정치는「여·야 협상합의의정서」에 따르는 입법과제이며 28파동의 합리적인 뒤 수습 등 해결 지어야 할 많은 과제를 안고있어 년두 국회소집의 객관적 필요성은 어느때 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예를 특조 위법제정작업에 들건대 신민당을 원내에 끌어들이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제가 됐던 동법의 제정 및 활동시한이 4월말께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임시국회소집의 무기한 연기는 특조 위법제정이나 특조 위의 활동에 관한 양당간의 합의내용을 사실상 사문화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0일의 여·야 총무회담에서는 공화당은 신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본회의회기에 상관 없「부정선거 재발방지 보장립 법특위」를 발촉 시키기로 했다 한다. 그러나6·8 총선부정·부패의 결과를 시정키 위한 특조 위법의 제정작업이 지지부진하여 아무런 실핵도 거둘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이 마당에서 부정선거의 재발을 막기 위한 입법을 준비한다는 것은 「난센스」까지는 아니더라도 6·8선거부정사태를 수습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본말이 엇갈린 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뿐더러 연초국회의 유산은 국회에서의 대통령 년두 교보발표나 여·야외 정책기조연설을 모두 내팽개치게 함으로써 정책토론의 광장으로서의 국회의 존재의의를 감소시키고 말았다. 앞서 대통령은 이 한해 시정의 대강을 기자회견에서 밝힌바있고, 또 앞으로 공화당의장과 신민당당수도 각각 신문기자회견을 통해서 정책기조에 관한 포부를 밝히게 되리라고 한다. 이같이 국회가 소집돼있지 앉더라도 행정부수반이나 여·야외 정책기조를 국민 앞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교서나 연설이 국회를 통해서 국민 앞에 발표되는 것과 국회를 넘어서 국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 사이에는 그 의의에 있어서 중대한 차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대의 민주정치의 중추기관으로서의 국회의 권위를 살려주는가 손상하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요, 나아가서는 국회의 유용무용논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내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집권당이 비단 소수당의 존재와 의사를 전적으로 묵살할뿐더러 진일보하여 스스로가 의회정치의 묘혈을 파고 전체주의의 체제적 완성에 박차를 가한 예는 세계각국에 비일비재하다. 우리는 우리 나라 공화당이 이런 악 선례를 의식적으로 추구하고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이 보여준 국회소집기피증과 의회경시경향은 전체주의에 접근하는 결과를 착실히 쌓아 올리고 있음은 부정 못한다.
이점을 부 명예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의회부재, 정치부재의 장기화가 그실 위험한 것임을 자각한다면 공화당은 솔선해서 당장 국회를 열도록 해야할 것이오, 여·야간의 계쟁점은 모두의회정치의 형식과 절차에 따라 해결 짓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절대 다수당이 된 집권당이 제손으로 의회정치를 실질적으로 매장해 버린다고 하면 그 역사적 책임은 무엇으로 해제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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