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배우는 경제용어] 2. 편파 판정·반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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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의 반미 감정이 높아가고 있다. 단순한 비난의 정도를 넘어 미국 제품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반미운동은 운동권 학생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게다가 미국 제품 불매는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차세대(FX) 전투기 강매 요청,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 등의 요인도 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반미 감정을 촉발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벌어졌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의 불공정 판정이었다.

불공정 편파 판정으로 억울하게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 선수에 대한 동정이 미국에 대한 반감에 이어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쇼트트랙의 상품가치는 ‘탁월’

스포츠에서의 불공정한 판정과 반칙이 나라의 이미지는 물론, 국가의 상품 구매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비이성적인 홈 텃세가 스포츠 정신을 불신과 불명예로 오염시키는 수준을 넘어 경제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반칙과 편파 판정이라고 하면 양심의 문제 또는 도덕의 문제, 정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불공정 판정과 반칙도 나라 살림, 물가, 실업, 국제 무역, 환율 등을 다루는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학의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을 도입하면 다른 학문보다 더 체계적으로 반칙과 편파 판정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경제학 원리를 이용해 먼저 스포츠 현장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판정 및 반칙이 추방되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그리고 홈 텃세인 홈 어드밴티지 또한 어떻게 해석되고 작용하는지 알아보자.

모든 상품은 독특한 특성의 묶음이다. 이것은 미국의 경제학자 랭커스타(Lancaster)가 주장한 상품의 특성화 이론이다. 예컨대 자동차라는 상품은 기능성, 편리성, 경제성, 안전성과 같은 특성으로 이루어진 기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은 단 맛과 입 안에 녹는 부드러운 맛을 특성으로 갖춘 식품이다.

우리나라 동계 올림픽의 메달 밭인 쇼트트랙이라는 경기 역시 몇 가지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 특성의 묶음을 팬들이 소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스포츠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듯이 쇼트트랙 경기 역시 쇼트트랙만의 4개 특성을 가진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쇼트트랙 경기의 특성은 첫째,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월등한 기술 및 기량의 공급이 필요한 경기라는 점이다.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 위에 잘 서지도 못하는 사람도 많을진대 비호처럼 속도를 낼 수 있는 능력에다 특히 코너를 도는 탁월한 기술이 필요한 경기가 쇼트트랙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인 관객은 선수들의 그러한 탁월한 기술과 기량을 즐기는 것이다.

둘째, 스릴 넘치는 경합 경기라는 점이다. 쇼트트랙은 다른 스포츠 경기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각축 과정이 많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한 경합 과정이 경기의 흥미를 한층 자아내게 한다.

보통 소비자(관객)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더 많은 만족을 느끼면서 그 팀의 인기 또한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인기 상승을 경제학 시각에서 보면 수요가 많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특성으로는 다른 어느 경기보다 순위, 이른바 등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 또는 나라가 몇 등 하느냐는 결과에 대한 관심이다. 좋은 성적을 낼수록 보는 사람은 더 즐거운 만큼, 성적이 우수한 팀이나 선수의 경우 그만큼 수요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평소 비인기 종목이라 해도 금메달이 예상되는 경기라면 그 경기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다. 이는 소비자들이 스포츠의 등수라는 속성을 즐기려는 행위로 풀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페어 플레이 정신이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페어 플레이 정신을 든다. 페어 플레이 정신이란 게임의 룰을 지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승자에게 존경심을, 패자에게 위로를 보내는 정신이 스포츠 경기의 페어 플레이 정신이다. 이 페어 플레이 정신이야말로 스포츠라는 상품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다.

자동차를 구입하러 간 소비자(수요자)는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얼마까지 낼 수 있는지 등의 기능성과 에어백 및 ABS가 설치되어 있는지의 안전성, 그리고 연비로 대표되는 경제성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자동차 구매를 결정한다.

쇼트트랙 경기 역시 경기를 직접 관전하거나 TV로 시청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최고의 기량, 박진감 넘치는 승부, 승자에 대한 존경심, 페어 플레이 정신 등이 다른 스포츠의 상품이 가져다주는 만족보다 더 크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스포츠의 근간은 이른바 페어 플레이 정신이다. 스포츠에서 페어 플레이 정신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번 동계 올림픽의 쇼트트랙 경기에서 관중들의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스포츠에서의 페어 플레이 정신의 훼손은 스포츠라는 상품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페어 플레이 정신 훼손으로 상품으로서 스포츠의 다른 특성인 이른바 ‘최고의 기량, 박진감 넘치는 승부, 승자에 대한 존경심’마저 훼손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의 반칙은 상대의 반칙은 물론, 폭력까지 불러일으킨다. 처음 반칙이 일어났을 때 반칙을 한 선수에게 엄격하게 처벌을 가한다면 상대의 보복성 반칙이나 폭력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반칙의 초기에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반칙으로 피해 본 선수는 보복성 반칙을 할 경우가 많다. 보복의 악순환을 낳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는 상품의 질을 하락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여 한다. 맛 좋은 후지사과를 판다고 돈을 받은 후 썩은 사과를 내놓는 상인이 약속 위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치와 같다. 모처럼 경기장을 찾은 팬(소비자)이나 TV 시청을 하는 팬들의 만족을 감소시키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반칙이 난무하면 관중은 떠나가게 돼 있다. 그러면 그 스포츠 경기는 존립이 어려울 수도 있다.

▶ 반칙 방치하면 경기 만족도 반감

지난해 프로야구 롯데의 외국인 선수 호세가 삼성과의 경기에서 빈볼 시비로 삼성투수 배영수를 구타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호세는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페넌트 레이스 잔여경기(8경기) 출장 정지와 3백만원의 제재금을 받았다. 다소 가혹한 징계였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박찬호 선수 또한 99년 LA 다저스 시절, 애너하임 엔젤스와의 경기에서 폭력을 휘둘러 벌금 3천달러(한화 3백60만원)와 7게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초기에 반칙이 제대로 제어되지 못한다면 선수들은 반칙이 두려워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실력 있는 선수가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반칙 잘하는 선수’ 혹은 ‘운이 좋은 선수’가 우승을 함으로써 팬들의 만족도가 감소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어부지리로 우승한 호주 선수 스티븐 브래드베리나 미국의 오노 선수에게 존경심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존경은 커녕 오히려 야유와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것이다. 반칙, 오판, 편파 판정으로 인해 상품의 질이 하락하면 가치와 값도 하락한다.

질 높은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저품질의 상품이 대우를 받는 우스운 꼴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만약 쇼트트랙 경기에서 또다시 페어 플레이 정신이 훼손되고 반칙과 편파판정이 만연한다면 반칙을 한 선수나 당한 선수는 물론 쇼트트랙 경기 자체가 팬으로부터 외면 당하게 된다. 이른바 공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편파판정과 반칙은 공공의 적 ‘넘버 원(NO.1)’인 셈이다.

스포츠 경기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고의 기량, 승패, 순위 및 페어 플레이를 공급하고 있는 상품이다. 스포츠 상품은 다른 상품과 달리 소비자들의 참여에 따라 그 내용이 변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 열기에 따라 선수들의 플레이가 달라지고 승패와 순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품의 특성(경기 내용과 결과)이 홈 팀에 유리하게 나타나는 경우를 홈 어드밴티지라고 부른다. 홈 어드밴티지는 경기 개최국의 승리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홈 그라운드 이점이란 외국 선수들 보다 현지 적응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얻는 반사 이익이다. 여기에 홈 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개최팀(국) 선수들의 분발로 승리 또는 성적이 향상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홈팀 선수의 반칙과 묵인, 심판 매수, 편파 판정 같은 관전 스포츠의 상품으로서의 질을 떨어뜨리는 짓은 어드밴티지가 될 수 없다. 홈 어드밴티지는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홈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상품의 질을 하락시킬 뿐이다.

출처:iweekly 임상일 대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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