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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세분한 단조의 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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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년 전에 한국음악을 연구하기 위해 내한했던 한국인3세 서영세씨가 귀국을 얼마 앞두고 작품발표회를 가졌다. 한마디로 이 작곡가의 음악에는 집요한 고집이 있다. 그것은 주제가 기복을 타고 절정으로 육박하는 플로트를 피하고 최소한의 근사치로 분해될 뿐, 원형을 깨뜨리지 않는 줄기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리듬은 치밀한 미분도로 세분되고 음형도 비약을 억제하는 면밀한 체계로 진행된다. 그래서 천재적으로 작품이 감각적인 멋보다는 지적으로 척결된 단조의 묘미를 보이는데 그런 이념의 극치를 이 작곡가는 침묵으로 이끈 것 같다.
이는 곧 동양의 여백미와 흡사한 것이 아닐까. 「우하영적」과 피아노를 위한 5개의 「바가텔레」는 바로 그와 같은 취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이들의 구성인자는 리듬과 공백으로 이들이 상부상조한데서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 마지막의 「홍진만장」은 이 작곡가의 고집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꼽힌다. 변함없는 음형으로 응답하는 나팔과 소라를 중심으로 20여개의 타악기군이 용의주도하게 조응한다. 그러나 변주가 너무 완만해서 오히려 초조감을 준다. 바로 이 점이 서영세씨가 노린 정통이 아닐까. <김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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