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게임 빠진 중3 아들 걱정하는 30대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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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를 키우는 30대 후반의 전업주부입니다. 아이들 잘 자라는 걸 보면서 늘 뿌듯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주부로 지낸 게 하나도 후회스럽지 않을 정도로요. 그런데 요즘 중학교 3학년 첫째 아들 때문에 너무 속상합니다. 중 1까지는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게임에만 빠져 있기 때문이죠. 게임 랭킹이 높아 인기가 많다고 자랑하는데 한숨만 나오더군요. 전 잔소리를 잘 안 하는 편입니다. 평소 돌려서 좋게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야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른다”며 문을 꽝 닫고 방에 들어가 버리네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한편으론 아이를 잘못 키웠나 하는 생각에 혼자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아이가 어떻게 하면 게임을 좀 덜하고 공부에 전념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말 잘 듣던 자녀가 사사건건 토를 달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면 엄마 마음이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닙니다. ‘나는 부모 속 한 번 썩인 기억이 없는데 내 자식은 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죠. 또 요즘 애들은 귀하게 키워서 다 이렇게 버릇이 없나, 하는 체념 섞인 위안도 해 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지금 그렇게 말하는 엄마도 어릴 때 자기 엄마를 속상하게 했습니다. 다만 기억을 재구성해 스스로를 착한 아이로 재생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녀가 엄마를 속상하게 만드는 많은 부분은 사실 인간의 중요한 심리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빚어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독립입니다.

 세상 사는 게 복잡하고 피곤하니 저는 가끔 엄마 배 속에 다시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쉬고픈 충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너무 엽기적이라고요.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를 돌봐준다는 느낌에 푹 담기는 겁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힘없는 태아처럼 말이죠. 태아는 엄마 배 속에서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강한 보살핌을 받습니다. 겁나거나 부러울 게 없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계속 엄마 품 안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있습니다. 자유는 내가 남과 다르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죠. 내가 ‘차별성 있는 자유’를 갖는 게 심리적 독립입니다. 사춘기란 바로 이 독립을 배우는 시기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엄마에게 반항하는 건 너무나 정상적인 심리 발달 과정이라는 얘기입니다. 말대꾸 한 번 안 하고 착하기만 한 내 자녀, 결코 남에게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속으로 뭔가 곪고 있든지, 아니면 사춘기가 그저 뒤로 밀리고 있는 거니까요.

 운동선수에게 이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강력한 통제 아래 운동에만 매진하다 보니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제대로 사춘기를 겪지 못합니다. 독립 투쟁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면 청소년 때 성적이 좋다가도 20대 초반에 접어들며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독립 과정엔 늘 철학적 사고를 수반합니다. ‘놀지 못하고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운동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 계속 머리에 맴돌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단기적으론 집중력과 삶의 효율성이 떨어져 경기 결과가 나빠지는 거죠.

 사춘기 자녀가 엄마에게 반항하는 건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기쁜 신호입니다. 또 엄마의 사랑을 믿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엄마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반항을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 믿고 까부는 겁니다.

 

세상의 어머니들, 이건 꼭 아셔야 합니다. 사춘기 자녀는 발달 과정상 순간적으로 사이코패스와 유사한 수준의 문제 행동을 보인다는 걸요. 사이코패스의 중요한 심리적 특성 중 하나는 감성 에너지가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입니다. 공감은 감성 에너지가 나에게서 남으로 향하는 겁니다. 독립에 대한 과격한 욕구는 상대방으로 가는 에너지를 차단하고 모든 에너지를 나에게로만 향하게 합니다. 세상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다는 얘기죠. 아이들이 참 버릇없고 이기적이라고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독립에 대한 욕구는 이렇게 커지는데 자기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엄마야 영원히 내 편인 걸 무의식적으로 알기에 마음 놓고 독립을 연습하면서 까불 수 있지만 학교 친구는 다릅니다. 남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친구의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외로운 독립은 가치가 없습니다. 주변에서 내 존재 가치를 인정해 줘야 심리적 독립이 완벽해집니다.

 내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차별성이 뭘까요. 엄마에겐 성적이겠죠. 하지만 아이들 세상은 다릅니다. 중학교에서 공부만 잘하는 아이, 요즘엔 찌질이라며 인기가 없습니다. 운동 잘하고 게임 잘하는 아이가 인기가 좋습니다. 그렇기에 자녀가 게임에 몰두하는 걸 게임 중독이라고 야단만 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아닙니까.

 부모 대상 강연에 가서 “넌 도대체 생각이 있니”라고 자녀를 야단친 경험이 있느냐고 물으면 다들 웃습니다. 해봤다는 거겠죠. 아이들이 왜 생각이 없습니까. 아이들, 생각 굉장히 많습니다. 심리 발달 과정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갈등을 야기하며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훈련도 해야 하고, 독립된 개체로서 사랑받는 자기 가치를 만들기 위해 게임도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청소년 자녀의 제일 큰 고민이 학업일 거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인간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좀 과격하게 얘기해서 공부만 할 거라면 중·고등학교를 굳이 다닐 필요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좋은 학원 다니고 검정고시 보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고등학교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양한 캐릭터의 친구와 선후배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면서 앞으로 살아갈 관계의 심리학에 대해 터득하는 과정입니다.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는 증거입니다. 자아의 융합, 즉 자녀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하나로 느껴지기에 잔소리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줄였으면 하는 간절함에서 잔소리가 나오게 되지요. 그러나 모든 인간은 시행착오를 통해 성숙하게 됩니다. 무결점의 인간이란 없죠.

 엄마의 잔소리는 무죄입니다. 그러나 잔소리가 자녀의 공부 성적을 올리지는 않습니다. 자녀와의 사이만 멀게 하고 오히려 공부를 더 싫어하게 만들 수 있지요. ‘담배 계속 피우면 당신 죽어’란 의사의 강한 권고가 오히려 담배를 더 피우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감성이 지쳐 있을수록 잔소리에 청개구리처럼 반응합니다.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동기 부여가 관건이고, 동기 부여는 저 사람이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있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녀와 게임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떤 게임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하는지를요. 자녀가 매우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 ‘엄마는 나를 정말 잘 이해해줘’라며 자기 속 이야기를 점점 더 많이 할 것입니다. 자기가 게임을 잘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그리고 공부가 잘 안 돼 고민되는 마음까지도요.

 100m 달리기 성적이 모두 다른 것처럼 학교 성적도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다 다른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니까요. 좋은 성적을 내라고 다그치는 코치 같은 엄마보다 언제든 찾아가면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격려해주는 힐링 맘에게서 아이들은 세상을 멋지게 살아갈 강력한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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