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고속도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갠 날에는 먼지가 나기 일쑤이고 궂은 날에는 긴 흙탕으로 되기 쉬운 구정물 개천을 끼고 있는 길을 몇 해 동안 아침저녁 걸어다니는 내게는 서울∼부산간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소리가 곧이 들리지 않으며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자가용 자동차가 쉽게 장만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 혹하기도 한다. 아닌게 아니라 몇 해 동안 미국에서 살다보니, 그 편리한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만 건너「버클리」라는 곳에 자리잡은 가주 대학에서「팔로알토」라는 곳의「스탠퍼드」대학까지는 자동차로 달려 두어 시간 걸리는 80마일의 거리지만 별로 먼 줄을 모르고 강연을 들으러 왔다갔다한 생각이 난다. 고속도로는 거리관념을 일변하게 한다.
「버클리」에서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지어놓은 고속도로를 달리려면「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도중에「비그서」라는 고장이 나타난다. 이곳은 미국에서도 풍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자동차 무대가 가지런히 달릴 수 있는 포장도로가 산허리를 끼고, 벼랑 위를 지나기도 하고 폭포같이 물이 쏟아지는 골짝들, 그리고 멋지게 놓인 다리를 지나가기도 한다. 먼 곳에는 안개 낀 산들이 첩첩이 보이며, 몰려온 파도는 바닷가의 바위들에 으르렁대며 거품을 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고, 이따금 고래나 물개 떼를 바라볼 수도 있다.
이런 자연풍치를 조금도 다치지 않고 고속도로가 이곳에 건설되게 된 이면에는 자연을 사랑하는 지방민들의 분투가 있었고 이런 태도는 미국 전역에 퍼져서 실용성도 실용성이지만 풍치나 고적을 아끼면서 길을 닦았다는 것이다.
그 어디를 가거나 훌륭한 포장도로이며 공원시설이며 그러나 자연미가 잘 보호된 채 쉽게 자동차로 찾아갈 수 있으니 미국사회에 야외활동을 통한 건전한 오락 기풍이 생긴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듯 싶다.
이렇듯 미국 각처를 연결한 고속도로는 상인이나 관광인 뿐 아니라 일반 미국인들의 이동성을 북돋워주며, 모든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이 같은 고속도로가 우리나라에도 모처럼 생긴다니 기대가 자못 크면서도 우리 현실을 볼 때 글쎄 하는 생각이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