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적 스타보다 헌신하는 보통선수가 중요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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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에 최연소 프로농구 감독이 된 그는 15년째 공백 없이 사령탑을 지키는 최장수 감독이 됐다. 사진은 경기 중 선수를 독려하는 모습. [중앙포토]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유재학(50) 감독은 탁월한 경쟁력으로 남다른 성과를 내는 ‘스페셜 원’이다. 2012~2013 프로농구에서는 정규리그 막판부터 4강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까지 20연승하며 파죽지세로 정상에 올랐다. 2007년,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챔피언이다.

 유 감독의 별명은 만수(萬手)다. 1만 가지 술수를 부리는 전략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전략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우승을 한 건 절대 아니라고 했다. 유 감독을 만나보면 대기업 부장이나 교사 같은 느낌이다. 우승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글쎄요? 뭐 특별한 게…”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말을 해도 ‘훈장님’처럼 뻔한 이야기일 때가 많다. 어쩌면 진리는 뻔하고 평범한 데 있는 건지도 모른다.

 ① 기술보다 인성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모비스는 기량 못지않게 인성을 중시한다. 유 감독은 “선수를 직접 가르쳤던 고교나 대학팀 감독과 주변 관계자를 찾아 선수의 성격과 자질을 알아본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우승 주역인 리카르도 라틀리프(24)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가 나온 미주리대 코치와 NBA 스카우트 등을 수소문했다. 해외리그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지만 ‘가르침을 잘 따르고(coachable) 열심히 한다(working hard)’는 평가가 나와 과감하게 발탁했다. “독선적인 스타보다는 팀을 위해 헌신하는 선수가 더 중요하다”는 건 유 감독의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② 자율은 없다

유 감독은 “단체 종목에서는 자율이 허락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믿어준 만큼 행동하지 않는다. 틀은 내가 잡아놓고 선수들은 그 안에서 움직이게 한다”고 했다. 그는 “훈련 때마다 죽을 것 같은 순간까지 자기를 밀어붙이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선수들이 한계를 넘어서도록 이끄는 사람이 지도자”라고 덧붙였다.

 ‘문경은 SK 감독처럼 자율농구로도 성공할 수 있지 않나’라고 묻자 “SK도 매일 아침식사를 함께 한다. 아침 먹기 전에 슛도 몇백 개씩 쏜다. 자율농구로도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성공을 이어가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③ 시간 약속은 철저히

훈련장으로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출발한다면, 모비스 선수들은 2시50분까지 탑승을 완료한다. 식사 때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시간을 지키는 건 유 감독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비스의 팀 문화다.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팀 치고 잘되는 팀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다른 스포츠단이나 조직에도 통용될 수 있는 원칙이다.

 훈련 분위기도 엄격하다. 유 감독은 “2007~2008시즌 이승준(35·현 동부)이 아침 훈련 때 골대에 기대 하품을 길게 해서 나가라고 한 적이 있다. 몇몇 팬들이 그걸 보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곤욕을 치렀다”며 웃었다.

 ④ 파벌은 없다

유 감독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기아에 입단했다. 1989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가 됐다. 그러나 허재·김유택·강동희 등 중앙대 출신 후배들이 차례로 입단하며 ‘방열 감독이 연세대 출신 유재학만 챙긴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무릎 부상을 이유로 28세에 은퇴했지만 파벌로 인한 갈등이 배경이었다.

 1998년 35세로 프로농구 최연소 감독이 된 그는 15년째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세대 선수 딱 2명만 뽑았다. 그를 14년째 보좌하고 있는 임근배(43) 코치는 경희대 출신이다. 양동근(32·한양대), 김시래(24·명지대), 문태영(35·리치먼드대), 함지훈(29·중앙대) 등 ‘판타스틱 4’로 불리는 모비스 우승 주역 중 연세대 출신은 없다.

 ⑤ 짧고 분명한 커뮤니케이션

SK와 챔피언전을 앞두고 유 감독은 필승 전략을 A4 용지 한 페이지에 압축했다. 이 내용을 원고지에 옮겨 적으면 공란까지 375칸이다. 원고지 2장도 안 되는 전술로 4연승을 거두며 챔피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무척 압축적이다. G3, G5처럼 G가 앞에 들어가는 건 껌(Gum)처럼 상대를 밀착 마크하는 수비 전술이다. 유 감독은 “우리 팀은 작전 시간에도 몇 마디만 하면 다 알아들어서 시간이 남는다. 움직이는 방향만 한번 더 인지시켜주면 끝난다”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 유재학은…
생년월일 : 1963년 3월 20일
출생지 : 서울
체격 : 1m78㎝·78㎏
출신교 : 상명초 - 용산중 - 경복고 - 연세대
감독 데뷔 : 1998년 대우 제우스 감독(35세·프로농구 최연소)
주요 업적 : 2007·2010·2013년 프로농구 우승,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우승
기록 : 프로농구 최초 400승 달성(2012년 12월 18일),감독 통산 최다승(425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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