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열전 (78) - 마이크 캐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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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뉴스를 보게되면 그날의 멋진 수비장면들을 모아놓은 하이라이트 코너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장면들을 보게되면 자주 나타나는 단골손님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그것은 그만큼 탁월한 수비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중견수 마이크 캐머론(29)은 이런 장면들의 고정 게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앤드류 존스(2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토리 헌터(26,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현역 최고의 외야 수비수로 평가 받고 있는 마이크 캐머론은 2001 시즌을 통해 그가 단지 수비만 잘하고 발만 빠른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였다.

지난 해 그의 공수에서의 패기 넘치고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는 시애틀이 시즌 116승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내는데 큰 밑거름이었다.

또한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 및 감독추천으로 올스타에까지 선정되는 등 캐머론 개인에게 있어서도 2001년은 검은 얼굴 때문에 웃을 때 유난히 빛나는 그의 치아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해였다.

마이크 캐머론은 1973년 1월 8일 조지아주 라그렌지에서 태어났다. 6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캐머론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또래에 비해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풋볼팀의 디펜시브 백과 와이드 리시버를 맡기도 했던 그는 1991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8라운드에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지명되면서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다.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능력으로 인정을 받았던 캐머론은 95년에 들어 드디어 빅리그의 무대를 밟을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 해 8월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데뷔를 하게 된 것. 그러나 이듬해까지 그의 주무대는 마이너리그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97년 부터였다. 풀타임 첫해에 캐머론은 11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9, 14홈런, 55타점, 23도루 등 신인으로서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며 화이트삭스 팀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92%에 이르는 그의 도루 성공률(25번 시도, 23번 성공)은 리그 1위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그에게 어김없이 찾아온 2년차 징크스는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149경기 출전, 타율 .210, 8홈런, 43타점. 특히 .285에 불과했던 출루율은 그에게 리드오프 역할을 기대했던 팀을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시즌후 화이트삭스는 1루수 폴 코너코(26,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받고 캐머론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시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레즈로의 트레이드는 캐머론에게 있어 좋은 약이 되었다. 타격의 자신감을 되찾은 캐머론은 한층 발전한 장타력과 기동력을 자랑하였다.(타율 .256, 21홈런, 66타점, 38도루)

그는 팀 내 유일한 20-20의 타자가 된 동시에 전시즌의 두 배가 넘는 80개의 볼넷을 얻어내며 출루하는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시기부터 삼진 개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98년 101개, 99년 145개)

하지만 캐머론의 레즈에서의 생활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로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를 요구하는 시애틀 역사상 최고스타, 켄 그리피 Jr.(32)의 대형 트레이드 상대로 투수 브렛 톰코(29), 두 명의 마이너리거(내야수 안토니오 페레즈, 투수 제이크 메이어)와 함께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 것.

따뜻한 동부 끝자락, 조지아주 출신인 캐머론에게 미대륙의 완전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북서부의 시애틀은 여러모로 낯설고 어색한 곳이었다.

춥고 자주 비가 내리는 날씨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가 시애틀에서 맡아야할 중견수 자리는 바로 시애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 스타라 할 수 있는 켄 그리피 Jr. 의 자리였다. 그가 시애틀의 오자마자 지역 언론과 팬들의 관심은 그가 그리피의 빈자리를 얼마나 메울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렸다.

아무리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캐머론이라 할지라도 매리너스 최고스타였던 켄 그리피 Jr.와 비교된다는 것은 몹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캐머론에게 매리너스의 팻 길릭 단장과 루 피넬라 감독은 자신감을 심어주려 하였다.

"편하게 생각해. 너는 켄 그리피Jr.가 될 필요가 없어. 그저 너의 운동능력을 보이기만 하면 돼."

그가 시애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처음 한 일은 바로 스윙폭을 줄이는 것이었다. 전년의 145개의 삼진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스윙폭을 줄이고자 했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비록 의도했던 삼진수를 줄이는 데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대신 타격의 정확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8년 이후 켄 그리피Jr. 이외에 시즌 개막전에 선발 중견수로 출장하게 된 첫번째 시애틀의 선수가 된 캐머론은 그만의 방식으로 그리피의 공백을 메워 나갔다.

비록 공격력에서 그리피와 비교대상이 될 수는 없었지만, 팀 내에서 존 올러루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55경기에 출전, .365의 수준급의 출루율, 간간히 터진 19개의 홈런 등으로 팀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데 한 몫 하였다.

무엇보다 넓은 세이프코 필드의 센터를 완전히 틀어막는 캐머론의 수비공헌은 단지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2001년. 시즌 전 그리피에 이어 또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 A-ROD까지 떠난 매리너스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들은 대부분 캐머론의 일취월장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었다. (2001년 기록 : 타율.267, 25홈런, 110타점, 35도루)

특히 타격에서 주자가 있을 때 클러치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생애 처음으로 100타점 이상(110타점)을 기록하게 되었다.(주자 없을 때 .239 /주자 있을 때 .295)

비록 그렉 본의 부상으로 대신 올스타에 선발된 것이기는 하였지만 그의 성적은 올스타전에 출전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었다.

또한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골든글러브 단골손님인 버니 윌리엄스를 제치고 처음으로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었다. 그의 수비능력을 감안할 때 새로운 골든글러브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캐머론의 모습은 종종 과거 미네소타 트윈스의 최고 스타이자 지난 2000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커비 퍼켓과 비교되기도 한다. 공수주를 겸비한 중견수라는 점 외에도 그의 성품과 경기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잠시도 쉬지않고 훈련에 임하는 성실성은 과거 미네소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퍼켓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늘 웃으며 주변을 즐겁게 만드는 그의 낙천적인 성격은 클럽하우스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한다. 또한 연습이건 실전이건 늘 최선을 다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은 팀내 다를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2002년 시즌이 개막되어 그는 다시 한층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월 20일(한국시간) 현재 그의 타율은 .305. 홈런은 벌써 5개에 이른다. 삼진이 벌써 18개에 이를 정도로 고질병은 여전하지만 특유의 유연함에서 나오는 장타력은 거포가 부족한 팀타선에서 요긴한 역할을 한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현재까지는 그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타율 역시 3할대 타율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켄 그리피 Jr.의 대체선수 정도로 인식되었던 선수가 이젠 아메리칸리그 부동의 최고 중견수인 버니 윌리엄스(33, 뉴욕 양키스)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야구선수로서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9살의 나이. 5-tool을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인정받기 시작한 마이크 캐머론의 야구인생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마이클 테런스 캐머론 (Michael Terrance Cameron )

- 생년월일 : 1973년 1월 8일
- 신장 : 186cm 체중 : 86kg
- 투타 : 우투 우타
- 연봉 : 4,666,667달러(2002년)
- 소속팀 :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5 ~ 1998), 신시내티 레즈 (1999), 시애틀 매리너스 (2000 ~ 현재)
- 통산성적 (2002년 4월 20일 현재): 763경기, 타율 .253, 93홈런, 365타점, 425득점, 148도루

- 주요 경력
1995년 8월 27일 메이저리그 데뷰
2001 AL 올스타(1회)
2001 AL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1회)

이석무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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