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법안과 농민의 궁핍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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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지소유의 상한제가 기어이 폐지될 모양이다. 기업농을 육성하는 것이 시급한 농경의 과제이며 기업농육성은 도시자본의 유치 없이 불가능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해서 농지법안이 마련되고 있으며 농림부 안으로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오늘의 농촌경제실점으로 보아 그럴듯한 가정일지도 모른다.
2백50만 농가 중 2정보이상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농가는 16만여 호에 불과하여 6%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통계상으로 3정보 이상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농가는 1%를 조금 넘는 2만9천 호밖에 되지 않으므로 3정보 이상의 농지 소유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농민 중에서 농지를 대량 매입하고 기업농으로 성장할 수 있는 층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농민의 경제적 성장으로 기업농의 출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도시자본을 유치해서 기업농을 육성하자는 것이 이번 농지법이 논리는 핵심인 것 같다. 때문에 법인이 정관하나만 고치면 농지를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 이른바 기업농육성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개혁이 과연 기업농육성정책으로 필요 불가피한 것이냐 할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기존농민에게 기업농으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면 농정의 핵심은 스스로 자명해 지는 것이다. 기존 농민을 포기하려는 농정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영세농구조라 하지만 그러한 체제하에서 정상적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농산물가격정책이 선행적으로 보강되어야 할 것이며 이에 더하여 생산기술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제반의 노력이 가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세규모의 불이익을 협업의 추진으로 완화 내지 극복하는 것이 농촌경제를 위한 농정의 존재양식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3정보 이상의 농지소유를 허용해야만 기업농이 성립된다면 3정보 이상의 농지를 확보할 수 있는 도시계자 영농이 앞으로 농촌의 주류를 이루어야만 기업농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정책이 당정의 중심을 이룩하려면 현존 2백50만 농가 중 1백70만 호는 도태되어 농업 노동자로 전락되거나 도시산업노동자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이 된다.
그러한 배출노동자가 공업화로 흡수될 전망은 당분간 없는 것이라면 농민의 3분의2는 농업노동자화해야 한다는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농촌임금수준으로 보나 농업노동의 계절 성으로 보나 대규모 농업노동자의 생존기반은 있을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대부분의 농민을 농업노동자로 전락시키는 농정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셋째 도시계 기업농이 농촌에 침투할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이 진실로 자영농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현실적이 못 된다. 이윤비율이 일반산업보다 낮은 것이 농업이라면 기업농으로 투자할 어리석은 도시민은 없을 것이다. 사리가 이와 같다면 식량공급원으로서의 농지보유이상을 도시민이 출자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이 경우 도시민이 자영한다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며 실질적인 소작제도가 일반화할 것도 분명하다. 비료값 종자값 따위를 빌려주는 정도로 3·7제 또는 2·8제의 타작을 권장하는 것이 기업농일 수는 없다.
현실적인 여건이 성숙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농민의 궁핍화를 강요할 기업농육성정책은 오산도 이만저만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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