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미코노스(희랍)<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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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런 섬을 상상해 보라. 인구 3천명. 모든 건물은 일색, 1층에서 4층의 높이. 길은 모두 화강석으로 깔려있다. 직선 길은 하나도 없고 마치 미로를 푸는 수수께끼 같은 골목을 따라가면 조그만「아치」가 나타난다.「아치」를 들어서면 불과 30평 미만의 백색교회가 있고 그 앞에 조그만 광장이 있다.
교회 문 앞에는 검은「드레스」입은 희랍 노파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다시 골목을 돌면 길가의 노천「카페」에서 고아한 희랍의 음악이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마을 끝에 가면 무척 소박한 풍차가 느릿느릿 돌고 그 너머로 포도주 빛깔의 지중해가 펼쳐진다. 짙푸른 바다와 손으로 빚은 소박한 일색의 건물의「콘트라스트」는 숨막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어느 골목을 들어서도 놀라움과 즐거움이 가득 차있다. 자전거에 과일을 가득 싣고 가까스로 빙글빙글 돌아나가는가 하면 아낙네가 당나귀 등 양편에 짐을 늘어뜨리고 그 가운데 앉아 뒤뚱거리며 지나간다. 골목길이 어찌나 깨끗한지 신발신고 걷기가 미안할 정도. 가끔 떨어져있는 당나귀 똥이 또한 애교 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미코노스」는 반달모양의 항구다. 중심부는 폭30미터 정도의 반달모양도로에 연하여 우편국 하나, 선박회사가 하나, 그리고 병원이 한 개 있다. 상점에는 이 섬의 특산품인 손으로 뜬「스웨터」·수공예품·수직의 천동이 걸려있다. 이 해안에는 희한한 새인「펠리칸」이란 놈이 사람들이 앉아있는 노천「카페」에까지 나타나 기웃거린다.
나는 이 낙원에서 소위「현대」라는 시대의 문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있다. 현대인이 이룩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현대의 가치란 어떤 것인가. 현대의 인간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인간을 저버린 도시. 인간성을 망각한 건축물. 도시설계가·건축가는, 그들 없이 소박한 사람의 손으로 세워진「미코노스」가 이다지도 훌륭한 이유를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깜짝 놀랄 독창성 같은 걸 발휘하려는 헛된 욕심에 사로잡힘이 없이 자기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에 이런 걸작품을 빚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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