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원자력협정 잠시 미루고 MD<미사일 방어> 협력 논의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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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04면

에드윈 퓰너 1941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독일계 가톨릭 이민 가정 출신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에든버러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싱크탱크인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의원 보좌관으로도 활동하는 등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3~77년 헤리티지의 설립이사를 지낸 그는 77년부터 헤리티지재단의 경영을 주도했다. 지난달 초 짐 데민트(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에게 이사장 자리를 넘겨줬다. 김상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취임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 중앙SUNDAY는 1977년부터 36년간 미국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워싱턴 정가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온 에드윈 퓰너(72·사진) 박사를 지난 1일 만났다.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그는 ‘미국 보수의 대가’라고 불린다.

‘미국 보수의 대가’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이던 2005년 3월, 그는 버지니아 자택에 박 대통령을 초대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을 “존경하는 여성이자 절친한 친구”라고 표현한 그는 “이번에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오면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앞둔 박 대통령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미 동맹은 기복도 있었지만 동맹의 미래는 밝다. 이번 정상회담은 문제를 논의하는 무대가 아니라 동맹 60주년의 성과를 자축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때도 긍정적이고 미래 전망을 밝게 하는 연설을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문답 요지.
 
 -올해는 한·미 동맹 60주년이자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인데, 한반도에는 여전히 전쟁 위협이 존재한다.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하고 미국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50년간 워싱턴에서 지켜보니 한·미 관계가 때론 위험해진 경우도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제기됐다. 되돌아보면 긴장 완화 노력이 있을 때마다 북한 때문에 실패했다.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북한과는 거래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존 F 케네디는 ‘결코 두려움 때문에 협상하지는 말자. 그러나 협상 그 자체를 두려워하지도 말자’고 했다. 비이성적인 김정은 정권과도 협상을 해야 하나.
 “윈스턴 처칠도 케네디와 비슷한 말을 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다만 대화를 하면서도 우리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한다. 내가 진짜 우려하는 건 한반도 문제의 가장 긴밀한 파트너인 한·미·일 중 사이에서 지금 한·일 관계가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과 직접 대화하든 중국을 통해 북한과 대화하든 한·미·일 관계를 좀 더 긴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일성·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럭비공처럼 예측하기 어려운데.
 “김정일 생전에 김정은이 후계자가 될 것이란 확실한 담보가 없었다. 그래서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층을 결집하고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김정은 정권이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한 상태로 계속 갈 건지 단정하기 어렵다. 같은 민족인데 북한은 왕조 지배체제가 유지되고, 남한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꽃피는 한반도의 현실은 아이러니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특이 현상이다. 나는 신중한 낙관론자다. 언젠가는 북한이 변할 거라고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지난 20여 년간 포용정책도 억제정책도 북핵 문제를 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북핵과 남북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지도자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첫걸음을 내디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지만 나중에 눈물을 흘린 것처럼 북한도 한국이 제시한 화해 시도에 긍정적으로 화답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는 일직선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이 성공할 기회를 얻길 바란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핵우산이 찢어졌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한국도 영국·프랑스처럼 핵 보유를 추진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영국·프랑스가 핵을 보유한 시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였다. 따라서 동맹 60주년을 맞은 한·미와 영국·프랑스의 경험은 다르게 봐야 한다. 다만 미국 역시 ‘한국은 핵무장이란 말도 꺼내서는 안 된다’고 막아선 안 된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든 미군 전술핵의 재배치든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한·미는 진지하게 협의해야 한다.”

 -일본과 인도에는 재처리와 농축 권리를 인정한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는 소극적인데 한국의 비확산 의지를 충분히 믿지 못해서인가.
 “현행 협정을 2년 연장하기로 합의했으니 다행이다. 일단 협정 문제는 잠시 미뤄두고 한·미 양국 군은 미사일방어(MD)를 놓고 협력 강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중국은 지정학적 완충지대(buffer zone)로 여겨온 북한을 포기할 수 있을까.
 “북한에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국가는 중국이다. 북한 비핵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일본·대만이 핵무장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이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한국·일본·대만 등) 중국의 동부 연안 국가에 핵무기가 있는 상황과, 중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북한이 책임감 없는 불량국가가 되는 상황 가운데 어떤 경우가 중국에 더 심각한 것인지 중국은 잘 생각해야 한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제대로 자리 잡고 나면 중국은 북한에 ‘책임 있는 국가가 돼라’고 강력하게 주문해야 한다.”

 -당신은 G2(미국+중국)는 없고 G1만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 쓴 대로 미·중 간에 패권 전이가 일어나지 않을까.
 “현재 유일 초강대국은 미국이다. 폴 케네디의 말이 맞지만 문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거냐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데 30~40년이 걸렸다. 전체 추세를 보면 중국 경제가 연간 7%, 미국이 2% 성장하면 중국이 언젠가는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다. 법치, 개인의 자유, 민주적 절차 등 어떤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나 원칙을 다른 국가가 존중해야 하는데 중국은 다른 국가가 공감해줄 가치가 없다. 중국이 경제·군사적으로 성장하면 이웃나라들이 걱정한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1년에 태어났는데, 평화·여성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헤리티지재단 출신으로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침략을 부정하는 행위를 어떻게 보나.
 “일본이 과거를 부정한다고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난 아베가 최근 취한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인정하길 바란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점령한 일본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일왕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바람에 독일과 달리 일본의 과거사 도발이 계속되는 것 아닌가.
 “역사적으로 보면 당시로선 (일왕에 면죄부를 준 것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평화헌법과 함께 국가 재건에 도움이 됐다. 심한 고통을 겪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 옳은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수차례 방문한 지한파인데 한반도 통일은 언제쯤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나.
 “나는 125회 이상 한국을 방문했다. 통일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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