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한자의 약자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0일 문교부는 우리의 상용한자 중 일부를 약자로 제정하는 안에 일단락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교부내 국어심의위원회 한자분과위에서는 그동안 9개월에 걸친 신중한 검토·심의를 거듭한 끝에, 현재 국민교에서 고교까지 단계적으로 가르치고있는 1천 3백자의 상용한자 중 획수가 많고 자체가 복잡한 5백 42자를 약자화하기로 결정, 내 20일의 최종 심의에 회부할 「문교부한자약자제정안」을 일단 확정시킨 것이다.
원레 우리나라 학교 교육 과정에서 제한된 상용한자를 가르치기로 한 것은 당장 한글 전용의 시기상조라는 견지에서 부득이 과도기적인 임시방편으로 채택됐던 것임을 상기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 상용한자 중에는 자획수나 자체 구조가 너무 복잡하여 배우기 어렵고 쓰기에도 심히 불편한 단자들이 많아 교육상으로는 물론 신문·잡지 등에서의 상용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리하여 이러한 상용한자의 약자화 운동은 비단 우리 나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터이며, 또 한자의 본고장인 중공본토에서는 그 범위를 훨씬 확대시켜 거의 모든 상용문자를 약자화시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까지 나오고 있음을 볼수 있다.
그러므로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추진된 이와같은 약자제정 운동이나, 그 심의 과정에 있어서의 신중성 등은 원칙적으로 지지와 찬양을 보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관계 심의위원들이 예정작업기간을 연장해 가면서까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우리나라 고유의 옛약자활욜문제, 상형문자로서의 시각적인 의미연관 및 외래어로서의 국제성등에 대한 깉은 고??를 다한 흔적이 역력한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만일 이러한 약자 등이 정식으로 채택되어 일용에 쓰이게 된다면 우선 성인들에게는 쓰기 쉽고 보기 좋은 한자의 실용이 구체화되어 우리의 문자생활에 많은 영향을 줄것이 틀림없는 일이라 하겠다. 다만 우리나라의 실정은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한글 전용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최상의 이상인 만큼 이런 계제에 다시 한자 약자화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할 것인가는 깊이 검토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굳이 문교부가 새로운 약자를 제정하지 않더라도 어떤 한자에 있어서는 이미 상용되고 있는 약자가 상당수에 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 새삼스럽게 새로운 약자를 가르치고 배우려고 할 때 발생할 것으로 보이는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대하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도시 우리나라의 학교교과과정에서 제한된 수효나마 상용한자를 가르쳐야할 필요성은 그것을 통하여 어느 정도 우리나라의 전적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자 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서체의 사용을 통하여 부지부식 중에 습득하게 된 상당수의 약자외에 또다시 5백여자의 새 약자만을 배운 청소년들의 전적에의 접근에는 2중 3중의 고통만이 가중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한글 전용을 보다 촉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사료된다.
원래 한나라의 문자개혁이란 최고도의 신중과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인만큼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서도 성급한 결정을 피하고 상당히 오래 기간에 걸쳐 보다 광범한 토의과정을 거쳐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기를 희망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