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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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립 서울 대학교의 연구비가 전체 예산의 0.3%밖에 안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 액수는 7백 43명의 교수(전임이상) 들을 위한 3백 95만원이다. 물론 모든 교수가 동등하게 연구비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생각하기 힘들다. 분야마다 그 비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3백 95만원」이라는 액수는 그 절대치에서 벌써 불모성을 드러낸다. 한 분야의 연구비에도 부족할 액수를 공과대학에도, 의과대학에도, 대학원에도 그리고 나머지 10여개의 연구기관에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등록금을 받는 경리기관에 불과하다는 ??의감이 앞선다. 『최소한 연구원서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없이 연구를 하라는 것은 젖소에 먹이를 주지 않고 젖을 짜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서울大 문리대의 한 교수는 이런 푸념조의 글을 발표한 것이 있다. 『머리에 풀칠을 할 수 없는』교수의 고뇌가 엿보인다.
외국의 경우, 연구비는 반드시 국가에서 투자하고 있다. 사입이나 국립 혹은 주립을 가릴 것 없이 국가의 보조에 의존한다. 미국의 일류 사립대학들은 교수연구비의 80%를 연방정부가 부담한다. 식량 기근에 허덕이는 인도 정부도 대학에만은 1백%의 연구비를 주고 있다. 국가의 부와 연구비를 정비례로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부터 우리와는 다르다.
외국대학의 전체 예산 중에서 차지하는 연구비의 비율도 대체로 15%내지 50%이다. 영국 「프린스턴」대학은 50%, 「컬럼비아」대학이 46%… 「스웨덴」은 발전이나 임학에 관한 「테마」는 무제한…. 일본의 북해도대학까지도 30%이다.
대학의 연구업적은 대학이나 교수의 명예만은 아니다. 바로 국가의 보물인 것이다. 대학은 어느 의미에서나 생산기관이지, 소비기관은 결코 아니다. 만일 우리의 위정자들이 지금까지 교수들이 쌓아 놓은 연구업적을 불신한다면 그 책임은 연구비를 겨우 3, 4만원밖에 투자하지 않았던 그들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대학의 폐허는 언젠가 국가의 폐허도 초래할 것이다. 교수들의 허풍선 같은 가방은 어서 무게를 찾을 날이 와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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