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의 물질 매력에 풍덩 … '해남' 꿈꾸는 이 사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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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제주 섭지코지에서 이한영 대표(가운데)가 ‘해녀 어머니들’과 함께 섰다. 왼쪽부터 홍두애(72)·장광자(70)·박추란(71)·고천혜자(70)씨, 모두 전통 물질 시연을 하는 신양리 해녀들이다.

‘더운 여름날 제주 앞바다에 휙 뛰어들어 갯것을 건지며 살면 얼마나 멋질까.’ 서울의 한 출판사에 다니던 스쿠버 다이빙 매니어 이한영(40)씨는 ‘해남’(海男)의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곧잘 상상하곤 했단다. 2008년 4월, 그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제주도로 날아갔다. 제주시 한림읍 어촌계가 운영하는 일종의 문화학교, 한수풀해녀학교가 문을 열면서다. 16주 동안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물질을 배웠다. 1기 입학생 34명 중 제주 출신이 아닌 사람은 그를 포함해 고작 두 명, 남학생은 세 명뿐이었다.

 “정말 ‘해남(海男)’을 꿈꿨습니다. 근데 해녀 어머니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나봐요. 뭍사람이, 그것도 남자가 이렇게 힘든 물질을 왜 배우려고 하는지.” 이씨는 해녀학교에 다니면서 ‘해녀 어머니들’과 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알게 됐고, 그 문화가 사라져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안타까웠다. 그해 말 그가 제주해녀문화보존회를 꾸린 이유였다.

 “여름에 해녀들이 물질한다고 생각들 하시죠. 아닙니다. 7월 즈음은 금채기입니다. 제주 해녀들은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얼음장 같은 바다에서 물질을 합니다.” 이 대표는 미 해군 잠수연구소의 보고서를 언급했다. “제주 해녀의 잠수력은 타고난 게 아닙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 번 더, 좀 더 깊이 물속으로 들어간 거죠. 모성애의 소산입니다. 함께 일하고 돕는 해녀공동체 문화는 정말 소중한 유산입니다.”

 2012년 기준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해녀는 4574명, 이 중 절반이 70세 이상이다. 젊은 사람은 물질을 하려 하지 않는다. “해녀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이 해녀들의 문화를 더 많이 알고, 좋아하게 만들려면 뭔가 새로운 게 필요했어요.”

 제주도와 협의 끝에 지난해 7월 이 대표는 섭지코지에 있는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전통 물질 시연을 시작했다. 그가 출판사 일을 아주 그만두고 제주도에 눌러앉은 것도 그 즈음이다. 인근 신양리 어촌계 해녀 16명이 시연에 나섰다. 평균 나이 70세, 다들 신양어촌계 해녀회장 한 번씩은 해본 실력파 해녀들이다.

 시연에선 해녀 두 명이 10여m 깊이의 대형 수조에 들어가 10분 남짓 평소 물질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시연에 대한 관객 반응, 특히 외국인들의 반응은 뜨겁다. 수줍어하던 해녀들도 점점 관중의 환호에 손을 흔들어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연중무휴 시연을 하는 터라, 해녀 어머니들이 명절에 나오실 때도 있어요. 싫은 내색 않으시고, 외려 ‘해녀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줘 고맙다’고 하실 땐 제 맘이 찡하더라고요.”

 오는 7월부터는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싱크로나이즈 공연에도 신양리 해녀들이 찬조 출연한다. 이 대표는 이 기세를 몰아, 해녀 물질 교과서, 해녀문화해설사 자격증도 만들고, 해녀 문화 콘텐트도 다양하게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직 프로 드러머의 도움으로 해녀 노래 전문 그룹사운드(숨비소리)도 결성했다. 제주도를 유명하게 만든 ‘제주도의 푸른 밤’ 같은 히트곡을 내는 게 목표다.

 6~8월엔 제주도 101개 어촌계와 협력해 제주해녀문화보존회 홈페이지(www.soombi.co.kr)에서 해녀들의 물질을 언제,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서비스도 시도하려고 한다. 제주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현장에서 직거래할 수 있도록 활로를 틔워주려는 의도다.

 “무상 의료 혜택을 주고 잠수복을 주는 것이 해녀문화보존의 다가 아닙니다. 해녀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는 게 진짜 보존이라고 생각해요. 현업 해녀 70%가 물질할 수 있는 기간이 채 5년이 안 남았어요. 시급합니다.”

제주=나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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