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관리의 민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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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나라 전파가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그 독자적인 주체성을 주장하게 된지 오늘로써 만 20년이 된다. 1947년 10월2일, 우리는 처음으로 HL이라는 호출부호로써 국제적파동맹(ITU)에 가입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전파세계에서 우리의 독립적인 인격이 인정된 것은 바로 20년전의 오늘부터의 일이었으니, 제4회 「방송의 날」을 기념하는 성년 한국방송의 감회는 실로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지난 20년의 발자취를 회고할 때 맨 먼저 느끼는 것은 엄청난 금석지감이라 할 수 있다. 사단법인 조선방송협회 산하의 1개 「키·스테이션」과 18개 지방방송국중 12개 지방 「네트워크」를 인계받고, 「라디오」수신기대수 약 23만대로 출발한 우리의 방송은 이제 국영과 민영, 「라디오」와 「텔리비젼」·FM방송을 합하여 38개의 방송국과 「라디오」수신기 약 2백30만대(「스피커」장치포함), 「텔리비젼」 10만대이상을 보유하며, 하루 24시간중 거의 20시간 이상을 쉴새없이 전파를 내보내고 있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라디오」·TV할 것 없이 우리는 아직 「유네스크」가 설정한 인구백명당 10대 및 5「세트」의 최저기준에 약간 못미치고 있으나, 이것은 일본·자유중국·비율빈 등지를 제외하고는 전 아주국가중 제4위의 보급율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현대생활의 각 분야에 걸친 「라디오」·TV의 막중한 역할에 대해서는 새삼 중언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전파를 통한 「매스콤」은 신문과 함께, 아니 그 이상으로 국민생활의 이모저모에 심대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국민정신의 바탕과 그 방향에 대해서도 위대한 향도구실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이루어질 통신위성 중계를 통한 세계와의 연결을 아울러 고려할 때 우리는 이제 한국방송인의 세계사적 안목에 선 자체향상과 전파관리행정당사자들의 「매스콤」의 사회적기능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변경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음을 솔직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매스콤」자체의 발전 「메커니즘」으로 보거나,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 여건으로 보거나, 현재 우리의 방송이 아직도 무한대한 발전의 소지를 가지고 있음은 식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방송의 경우, 출력증가나 지방 「네트워크」 확장이 행정당국의 비현실적인 정치적 고려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 같은 현상은 이제 근본적으로 파기되어야 할 줄로 안다. 이날을 맞은 또한가지 반성은 민영방송에 대한 국영방송의 엉뚱한 경쟁의식이 국·민영방송의 독자적인 발전을 모두 좌절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수년래 우리 방송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돼 있는 공익성의 보장문제는 결코 국·민영 등 그 소유형태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프로그램·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또는 이를 지도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전체 방송관계자들의 양식과 민주주의적 신념에 입각한 관리방식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독단과 자의가 사회나 대중의 이름을 빌어 자유로운 토론의 여지를 말살케 함으로써 중론 즉정론이라는 「데마고그」를 분쇄할 수 있도록 방송관리방식 전반에 대한 반성이 지금 무엇보다도 아쉽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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