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극(유치진-드라마·센터소장, 김의경-극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위대한 사회는 위대한 예술을 낳는다. 연극은 황금시대의 상징으로서, 역사의 증인이 되어왔다. 연극은 증인이기 위해 자신의 역사를 가져야 한다. 온상이 가꾼바 나약한 그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의 피로써 민주주의를 위해 번제하듯 우리자신의 피 어린 싸움을 통해 이룩되어야할 그러한 연극의 역사요 전통이어야 한다. 제2회 연극절 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20일부터 「신협」을 필두로 총 8개 극단이 참가한 가운데 두 번째 연극절의 막이 올라갔습니다. 「셰익스피어」탄생 4백주년기념공연을 계기로 성숙된 이 연합「무드」는 연극 부진을 타개하는 한 탈출구로서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없을까요.』
낙조 깃들인 남산기슭 「드라마·센터」로 유치진 소장을 찾아간 젊은 극작가 김의경씨는 연극절 선언문의 기안자. 첫마디부터 「연극절」로 시작되었다.
『내 평생소원은 「연중무휴」의 연극공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기간이 불과 2개월 남짓한 연극절은 결코 만족스런 것은 아닙니다만 산만한 연극공연을 우선 이렇게 라도 집약시켜 관객의 호응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뜻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한때 「연중무휴」를 내걸고 연극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다짐했던 「드라마·센터」-. 그러나 이 땅의 연극 현실은 그나마 연극무대를 연극인에게 주지 못하고있다. 최근 2, 3년이래 유소장은 수척해진 것 같다.
『이번 연극절의 특색은 「드라마·센터」의 두 창작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번역극이라는 점인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소장은 『번역극은 그것을 상연함으로써 영양을 섭취하고 또 해외연극의 동향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지, 궁극적으로 민족 극을 수립하자면 우리 극을 상연해야 됩니다. 나 자신이 극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나,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나라는 창작극이 안나오게 환경이 되어 있어요. 첫째, 창작극의 가치를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아요. 원고료를 봐도 국립극장의 경우 연출가가 3만원인데 비해 그의 10배 이상의 힘이 드는 희곡료가 불과 5만원밖에 안되거든요. 둘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대성이랄까 그런 것에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극단이 대작주의에만 집착하는 통폐에 일침을 가했다. 『저도 유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극단의 노력과 실력이 모자라는 탓일지는 모르나 각 극단들은 한번의 공연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은「적자」 를 내느냐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극단「실험극장」의 대표이기도 한 김의경씨는 『연극을 잘했다 못했다』하는 성과에 못지 않게
『빚을 졌느냐 안 졌느냐?』하는 문제도 극단에는 중대사라고 말하며 그것이 오늘날 우리연극의 최대고민이라 했다. 그는 『우리 극단의 상업성 편중경향이 나타나고 따라서 관객이 더 잘 따라오는 번역극을 택하게된다』고 실토했다.
『연극의 기업화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지요. 연극이 성립되려면 극장(무대)이 있어야하고 돈이 있어야하고 배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극단에 재산이 있다면 배우밖에 더 있어요? 그 배우문제만 해도 각 극단에서 3, 4년 실력을 쌓으면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뺏어 가버리는 실정이거든요. 한 극단이 한 5년을 애써서 연기진의 「앙상블」을 이뤄놨다 싶으면 어느새 한 반수가 자리를 뜨지 않아요. 결국 연극은 다시 5년 전으로 뒷걸음질치는 거예요.』 이렇게 한발 나서고 한발 물러서는 동안 연극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유소장은 개탄한다.
『가장 뼈아픈 말씀입니다. 기왕 기업의 문제가 나왔으니 말씀인데 저는 기업의 뜻을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과학이라는 뜻의 기업이고 또 하나는 흥행이라는 뜻의 기업입니다. 전자는 우리의 경험을 기호화하는 것으로 똑같은 모험을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는 통계요 후자는 합리적인 경영, 즉 돈을 가지고 어떻게 흑자운영을 하는가 하는 상업상의 기업니다.』
『좋은 말인데,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 극단의 자세를 생각해야겠어요. 영화니 「텔레비전」이니 해서 이번 연극절에 참가하는 단체가 전부 배우난에 고심하고 있지 않아요. 결국 연극은 동지를 자꾸 잃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연극이 잘되면 그 자매라 할 수 있는 영화도 TV극도 다 덕을 볼 것이라고…. 그리고 연극인은 연극인으로서의 자부와 긍지를 가져야 해요.』
『그래서 저는 현재의 극단 수를 줄이자고 제의하고 싶습니다. 이번 참가단체가 8개 극단인데 그 반수로만 줄여도 연극의 결정적인 약점을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대신 공연횟수를 늘린다면 연극운동은 오히려 더욱 활발해지고 알차지리라 봅니다.』
현재 서울에 연극을 위한 무대가 있다면 단 2개-국립극장과 「드라마·센터」가 있고 그것을 합한 객석 수는 모두 1천3백여석. 「헬싱키」는 30여만의 인구인데도 매일 밤 공연하는 연극상설관이 9개관이나 있다고 말하는 유치진씨는 『최근 연극협회가 정부에 대해 창작극엔 보조금을 달라고 건의한 일이 있지요. 3·1연극상의 우수창작극 공연단체엔 30만원, 장막창작극 공연단체엔 10만원, 단막창작극공연단체엔 5만원을 보조해 달라는 건데, 어때요. 영화의 경우는 보장「쿼터」하나에 3, 4백만원을 호가하고 있는 형편인데….』 연극인들은 너무「청빈하지 않느냐고 웃는다. 『그리고 한 말씀 더-.』 『빈사상태에 있는 「드라마·센터」무대의 활용을 위해 연극계는 새로운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 같아요. 이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드라마·센터」무대에 수혈하는 작업은 곧 우리 연극에 보다 활기찬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극계의 원로와 젊은 연극인의 대화는 이밖에도 끝없이 이어져나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