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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사시에 붙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신속·정확·진실>
이른바 「사회복지를 증진」시키는 공기로서의 언론이란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치 않다. 모름지기 「사회복지」란 「소시얼·웰페어」(Social welfare) 혹은 서독헌법 제20조의 이른바 「소치알렌·슈타트」(Sozialer Staat)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모양이지만 여기에 있어서는 긴 정의가 필요치 않고 오직 언론의 사명과의 관련하에서만, 또한 언론육성을 위한 비판적인 견지에서만 언급해보고자 한다.
원래 언론의 사명은 첫째, 신속·정확한 보도와 둘째, 사회정의실현을 위한 목탁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있음은 췌언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두 가지 사명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지금 이 나라의 언론은 어떤 인간상 혹은 사회상을 묘사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정확도를 가지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실상의 인간상과, 신문에 반영된 그것 사이에는 가끔 상당한 거리가 있지나 않은지?
또는 어떤「이벤트」가 일어나면, 그 보도된 「이벤트」와 사실상의 그것 사이에도 거리는 없는지? 물론 정확성을 결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특히 사실묘사란 그 어려운 기술을 20년간에 극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속할지 모르지만 언론의 지대한 사명감에서 볼 때에 일층 이점에 대한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실천하는 용기를>
갑이 을에게 『당신은 하마같이 생긴 사람』이라고 야유할 때에 을은 그 뜻을 모르고 묵과하였으나 몇달 지난 뒤에 을이 우연히 동물원에서 하마를 본 뒤에야 비로소 대노하여 갑에게 달려들며 갑의 따귀를 쳤다는 속담과 마찬가지로 국민이 모 신문사의 보도가 사실과 맞지 않음을 모를 때까지는 묵묵히 있을 수 있으나 언제든지 사실은 진실그대로 나타나고야 마는 것이 이세상의 철칙이다.
둘째로 「사회의 목탁」이란 「목탁」의 염불만 외고있다고 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여기에는 정당한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느니만큼 판단의 능력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참된 판단을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수반되어야한다. 가끔 사회의 어려운 일이 당면할 때에 『적당히』 슬쩍 넘기면 되는 줄 착각하기 쉬우나 이 세상에 진리는 결코 죽는 일이 없다.

<대중은 현명하다>
대중은 우매한 것 같이 보일지 모르나 진리는 항상 대중 속에서 소생하고 재연된다. 신문과 사회와의 관계는 마치 혈액과 인체와의 관계를 방불케 한다. 인체에 있어서의 혈액은 흡수된 영양가를 신체 각 부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어떤 균이 인체에 침입할 때에는 이를 죽여버리는 중대한 작용을 한다.
사회에 있어서의 신문 역시 「뉴스」보도를 정확히 할 책임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참된 정론을 세울 중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혈액이 그 작용을 못하면 그 혈액을 바꾸어 버려야 하는 바와 같이 신문이 그 작용을 못하면 그 사회는 그 생리를 도로 찾을 권리가 생기고 사회는 그 생명을 되찾고야 마는 것이다.
한나라의 사회복지를 증진시키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상술한 2대 사명을 다하는 언론기관을 가지는데 있고 언론이 민주주의국가의 가장 큰 들보의 하나가 되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언론은 혼자서 있는 것이 아니요, 사회전체 특히 지성인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만큼 실사 언론이 그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치더라도 그 대부분의 책임이 지성인에 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고 사리를 버리는, 사기가 아닌 공론을 위한 공기로서의 언론의 전재가 하도 아쉬워하는 말이다.<전 서울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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