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도 병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사람들은 왜 병원에 갈까?

1)아프니까 치료 받으려고.

2)이상 있나 없나 확인해 보려고.

3)진단서 떼러.

4)주위에서 자꾸 가보라고 하니까

5)아플 때 받는 관심과 배려 받고 싶어서.

6)기타 등등

92년도 인턴 때 응급실 당직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36시간 당직제'라고 서른여섯 시간을 내리 근무하고 열 두 시간 쉬는 제도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병원 응급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북새통이다. 여기저기서 비명 지르고 악을 쓰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서른여섯 시간 동안을 쉴 새 없이 일하다 보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한숨 돌리려고 응급실 입구로 나왔다. 밖은 자정을 넘어 조용하고 청명했다. 평소 수위아저씨가 앉던 작은 철제 책상과 걸상이 비어 있어서 거기 잠시 앉았다. 저쪽 어둠 속에서 한 젊은 남자가 비틀거리는 여자 한 사람을 부축하고 응급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여자는 아무 말을 안하고 남자는 우물쭈물하더니 여자가 좀 어지러워해서 데려왔다고 한다고 한다. 챠트 종이를 꺼내 막 작성하려는데, 어느 틈에 나왔는지 선배의사가 뒤에서 다가와 한마디 툭 던졌다.

"부부싸움 하면 병원 와?"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는데, 그 두 사람은 겸연쩍어 하며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와! 그 선배의 내공이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척하면 척이지. 내가 공보의 때 당직 서면서 저런 환자 많이 봤어. 딱 보면 아파서 온 게 아니야. 여자가 부부싸움하다 상황이 밀리니까 여자가 아픈 척 시위하는 거지. 일종의 sick role(병자역할)이지.

하지만, 의사들의 인식도 상당히 바뀌고 있다. 예전 같으면 진짜로 치료 받으려고 온 환자가 아닌 게 '들통'나면, 무전박대나 푸대접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환자들의 그런 '다른 이유들'조차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오죽하면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에까지 오겠는가? 그들은 다른 이유에서 의사의 도움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과 사회적 이유들까지도 존중하고 보듬고 보살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환자와 의사 사이의 기대격차는 좁아지고 가까워진다.

일전에 군병원의 쇄신을 이야기 하며 나왔던 육군참모총장의 인터뷰 기사가 시사적이다. "꾀병도 병이라는 생각으로 성의 있고 친절한 진료로 환자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김현정 박사
- 서울시립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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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박사 기자 osgirl@korea.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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