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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은 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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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수경
한국P&G 사장

‘그린(Green)’, 즉 친환경 활동이 기업의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돼야 한다는 말은 언뜻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사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풍력발전이나 에너지 솔루션 회사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에 친환경이란 화두는 다소 부담스러운 트렌드였다. 기업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지역사회와 소비자, 환경단체 등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의무인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장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려면 비용이 들고, 점차 엄격해지는 환경규제를 맞추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투자와 노력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불과 최근 2~3년 사이다. 친환경 활동이 지구뿐만 아니라 소비자·임직원·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동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즉 기업은 친환경 제품 생산 과정에서 원가절감을 이루고, 소비자 혹은 지역사회는 사용 과정에서 에너지 절약을 경험하면서도 동시에 기존 제품과 동일한 가치와 효과를 누리게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이런 인식 변화를 토대로 이제 여러 기업에서 실제 성공사례들을 여럿 내놓고 있어 무척이나 반갑다.

 커피 생산자인 농가와의 상생을 모색한 네슬레는 비즈니스 성장에서 친환경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지한 경우다. 현지 농가들과 직접 협력하는 ‘네스카페 플랜’이 대표적 사례다. 네슬레는 커피 농가와 조합으로부터 직접 커피를 구매하고, 무료로 기술을 지원함으로써 고품질 커피 원두를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농가들이 친환경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설득했다. 커피 원두를 제거한 후 남는 커피 열매 찌꺼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물 사용을 절약하고, 남는 폐기물을 퇴비로 활용하는 친환경 재배기술을 농가에 보급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경은 물론이고 생산자·제조사·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됐다.

 생수업체 역시 용기 모양이나 보관성은 유지하면서 페트병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으로 친환경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초경량 페트병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유도한다. 기업은 원가를 절감하고 페트병 폐기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소비자는 가벼워진 페트병을 통해 편의를 누린다. 풀무원샘물의 경우 일반 페트병에 비해 35%나 가벼운 13.5g짜리 초경량 페트병을 선보였다. 연간 타사 대비 700t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데,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 1700t을 줄인 것과 맞먹는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P&G 역시 친환경적인 제품과 제품 생산 과정을 기업의 미래로 보고, 2020년까지 달성하고자 하는 몇 가지 중장기 목표를 수립했다. 그중 하나는 모든 제품과 제품 포장을 재활용 가능한, 혹은 재활용된 자재로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소비자가 물과 전력 등 자원을 절약하면서도 기존 제품과 동일한 효과를 누리게 해주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하에 개발된 것이 차가운 물에서도 때를 깨끗하게 제거해주는 세탁세제 ‘타이드 콜드워터’, 시간과 물 사용을 절약하는 섬유유연제 ‘다우니 싱글 린스’, 포장재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새로워진 질레트, 그리고 포장재로 친환경 물질 사탕수수를 사용한 팬틴 등이다.

 친환경 노력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P&G는 최근 국내 천안공장을 포함한 전 세계 45개 공장에서 ‘폐기물 제로’를 달성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폐기물을 쓸모 있는 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가능했다. 화장지 브랜드 ‘샤민’의 멕시코 공장에서 나오는 종이 침전물은 지역 주민을 위한 저비용 지붕 타일로 활용된다.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의 미국 공장 폐기물은 소파 쿠션 안에 들어가는 소재로, 면도기 ‘질레트’의 영국 공장 폐기물은 상업용 잔디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전략은 환경을 위한 노력을 빼놓고 논하기 힘들다. 기업의 그린 활동은 소비자와 환경단체, 지역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주주와 글로벌 투자자, 그리고 직원과 협력사 등 모든 이해 관계자에게 환영받고 있다.

이수경 한국P&G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