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올 경제성장, 아시아 11개국 중 끝에서 두 번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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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4마리 용 가운데 가장 앞서 달리던 한국’은 옛말이다. 이젠 아시아권에서 경제 성장률 꼴찌를 다투는 신세가 됐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발표한 ‘아시아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8%로 전망했다. ADB는 지난해 10월 2013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4%로 제시했으나, 이를 0.6%포인트 낮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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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성장률은 바닥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권의 국내총생산(GDP) 상위 11개국 가운데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싱가포르(2.6%)가 유일하다. 하지만 싱가포르와 비교할 처지가 안 된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인당 GDP가 5만1162달러로 한국(2만3113달러)의 배가 넘는다.

 ADB 보고서는 세계의 ‘성장 모범생’이었던 한국이 열등생으로 떨어졌다는 확인증서다. 보고서는 “아시아 각국이 전년의 경기둔화에서 회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시아 평균 성장 전망치는 6.6%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와 관계없는 남의 이야기다. 세계 각국이 속속 오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성장궤도로 복귀하고 있는 상황인데 유독 우리는 성장률 2%대의 저성장 늪에 갇혀 있는 것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성장률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충격이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쩌다가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이렇게 식어버렸을까.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최근 수출까지 부진하면서 수출과 내수라는 쌍발 엔진 두 개가 모두 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기업 투자는 식을 대로 식었다. 지난해 2분기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행진이다.

 문제의 본질은 성장동력이 꺼지고 있는데도 사회 전반에 위기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유병규 본부장은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안주해 있다. 전반적으로 위기의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3만 달러, 4만 달러 시대를 어떻게 열어낼 것인가에 대한 손에 잡히는 성장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지금 한국 경제는 고용창출능력을 잃어버렸다”면서 “의료·법률·금융 등 핵심 서비스업의 규제를 완화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할 수 있는데도 정부는 규제완화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의 ‘모르쇠 행보’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한은은 아예 성장에 관심이 없다. 0%대 성장을 당연시하며 금리 내리기를 반년째 거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을 사면초가로 모는 정치권과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처벌 강화 등 과격한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윤창현 원장은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입법으로 대기업을 몰아세우기보다는 대기업이 국내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노동계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는 경제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오정근 교수는 “강성노조들의 과도한 요구로 기업들이 투자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는 이제 이웃나라 일본의 ‘엔저 공습’까지 당하게 됐다. 일본이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등 국제사회에서 ‘엔화 약세’를 실질적으로 공인받았기 때문이다. 일본 수출업체들이 엔저라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사이 이들과 경합하는 한국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엔 비상이 걸렸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 이후 엔화 약세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이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상렬·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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