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일자리 5년간 51만 개 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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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은 최근 이상한 감사보고서를 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액(15조9496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영업은 적자(-3402억원)였다. 노동조합이 낸 임금 관련 소송에서 질 것에 대비해 3700억여원의 비상금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게 없었으면 한국GM은 흑자를 낼 수 있었다. 세계 165개 공장을 운영하는 GM 본사 입장에선 이런 곳에 일감을 더 줄 이유가 없다. 그만큼 일자리도 늘기 어렵다. 지난 2월 방한한 팀 리 GM 해외사업 총괄 사장은 “한국의 위험 요인은 원화 강세, 금속노조, 노동법”이라고 말했다.

 엔저(원화강세)는 외부에서 한국 경제의 입지를 좁히고, 고비용 노동 구조는 한국 경제의 속병을 키우고 있다. 한국은 경기가 썩 좋지 않았던 2011년, 2012년에도 4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해도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29만 개에 불과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인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없거나 일자리 만들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엔저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 세계적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 실적 부진으로 추가 고용 여력이 빠듯해진 것이 첫째 이유다.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2011년만 해도 평균 12.2%였던 국내 기업의 매출액 증가는 지난해 2분기 이후 5%대로 뚝 떨어졌다.

정부 대응도 늦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부동산 대책이 늦어지면서 건설업에선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1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수주 감소(-9조원)로 인해 앞으로 5년간 일자리 12만 개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 사이 기업 규제는 더 강화됐다. 2008년 5186개였던 정부 규제 건수는 지난해 1만3914건으로 급증했다.

 높아진 임금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경총에 따르면 1993~97년에는 임금이 10% 오르면 고용 수요가 0.58~0.65% 감소하는 데 그쳤다. 임금 상승을 감당할 만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2008~2011년에는 임금이 10% 오르면 일자리가 2.4~2.7%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일자리 창출 회피가 4배로 커진 셈이다. 반면 노동 생산성은 여전히 낮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미국의 절반(49%)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자동차·삼성중공업 등에선 통상임금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정기적 상여를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 판례가 모든 소송에 적용되면 일자리는 단번에 37만2000~41만8000개 줄어들 것이란 게 경총의 분석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하는 기업 환경을 고치지 못하면 저성장과 일자리 감소의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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