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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여직원 수사 압력 논란 …‘경란’ 번질 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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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경찰 고위층이 수사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넣은 경우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21일 서울 강남경찰서 황정인(45) 수사과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 고위층이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다. 국정원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39)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지난 19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었다.

 같은 날 황 과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언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지난 2007년 재벌그룹 총수의 폭행사건에 이어 경찰수사의 공정성은 다시 한 번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고위층의 부당한 수사 개입은 반드시 세상에 밝혀지고, 그 당사자는 회생불능의 파멸을 맞는다는 전례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21일 현재 117명이 ‘좋아요’ 표시를 하는 등 일선 경찰들 사이에 화제를 모았다. 황 과장은 이날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경험한 적이 있다”며 “당사자의 부당한 행위가 철저히 밝혀진다면 그런 일(경찰 고위층의 부당한 사건 개입)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내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일부 수사 책임자가 경찰 윗선의 사건 은폐·축소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하고, 경찰 지휘부가 이에 반박하는 등 마찰이 격화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18일 이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 김모(29·여)씨 등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사를 사실상 종결 지었다. 그러나 다음 날 초기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장이 “민주통합당의 고발장 접수 직후부터 서울지방경찰청이 수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에 서울청이 “적법 절차를 지키고 보안을 중시하는 수사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파문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20일 한 언론은 권 과장의 말을 인용해 “경찰청에서도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넣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경찰청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경찰청에서 (언론 대응) 지침과 관련해 권 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실이 없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비공식적으로 언론에 유출하지 말라는 취지로 주의를 준 사실은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부 경찰들은 권 과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양영진 마산 동부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간 무분별하게 이뤄진 경찰 내부의 수사 개입, 부당 지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지역의 한 수사관도 “수사를 하다 보면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종종 경험할 때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윗선의 수사 개입을 차단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지휘부는 긴장한 분위기다. 일각에선 “일선과 지휘부의 충돌이 일종의 경란(警亂)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20일 지휘부와의 티타임에서 사건의 파장 등을 고려한 향후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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