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가 조작, 신속히 적발하고 강력히 처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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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세계 15위다. 꾸준한 규제 완화가 이뤄낸 빛나는 성과다. 하지만 이런 덩치에 걸맞게 감독 강화가 제대로 뒤따라 왔는지는 의문이다. 지난 한 해 200여 개의 종목에서 불공정 거래가 적발됐고, 상장사 10곳 중 한 곳이 주가 조작 피해를 봤다. 선거 때면 ‘정치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고, 주포(주가 조작 주도세력)·쩐주(사채업자)·마바라(바람잡이) 등의 은어가 판친다. 외국인 큰손들의 주가 조작 사건도 꼬리를 문다. 증시가 작전 세력의 놀이터가 돼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주가 조작 근절 종합대책’은 자본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주가 조작 제보의 포상금을 20억원으로 올리고, 부당 이익의 두 배를 토해 내도록 처벌을 강화한 데서 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우리 증시가 작전세력에 휘둘렸던 것은 주가 조작에 대한 처벌이 미약했던 게 큰 이유였다. 증권 범죄자의 90%가 징역형을 면하고, 추징금도 부당이득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시세 조종=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져 주가 조작이 만연했다.

 이번에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금융위원회에 조사부를 만들어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조치다. 일부는 금감원의 이기주의에 밀린 ‘반쪽짜리 대책’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주가 조작 사건 처리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주가 조작 사건은 ‘거래소→금감원→증권선물위원회→검찰→법원’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보통 1년 넘게 끌었다. 이로 인해 통화 내역 등 수많은 증거자료가 인멸되고, 작전세력들은 미리 입을 맞추거나 해외로 도피하기 일쑤였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이제 금융위에 파견된 검사들이 금융당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사에 나서는 길이 열렸다. 사건 처리 기간도 3~4개월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무리 제도를 정비해도 제대로 운용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동안 자본시장법에도 증권선물위원회의 강제조사가 허용돼 있었으나 단 한 번도 행사하지 못하고 사문화됐지 않은가. 여기에다 주가 조작은 스마트폰이나 e메일 등 첨단 정보통신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교묘하게 진화하는 지능적 범죄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 법원 역시 중형을 선고해야 ‘주가 조작은 반드시 적발되고, 결국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증시는 우리 미래의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부동산에 편중됐던 개인자산은 증시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를 위해서도 벤처와 중소·중견기업들이 증시를 통해 꾸준히 양질의 자금을 공급받아야 한다. 증시가 투명해져야 건전한 투자 문화가 자라난다. 이번 종합대책으로 신속한 조사와 강력한 처벌을 통해 주가 조작과 한탕주의가 뿌리 뽑히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규제는 꾸준히 완화하되 감독은 한층 강화해야 우리 증시가 더 커지고 질적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