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거지아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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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스웨덴」의 국왕 「구스라프·아돌프」6세가 「헬싱키」를 방문한 일이 있다. 1952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이다. 많은 시민들이 질서정연하게 연도에 서서 이웃나라의 왕을 환영했다. 이때 돌연,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국왕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 어린이는 몹시 가난한 집 아이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티가 줄줄 흐르는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왕을 선도하던 사람은 「헬싱키」시의 젊은 경찰서장.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덥석 두 팔로 그 아이를 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스웨덴」의 국왕을 안내했다. 아이는 서장의 가슴에 안겨 장난을 치고 있었다. 왕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그 서장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계속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던 군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우레처럼 박수를 쳤다.
일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헬싱키」대학의 남녀학생들은 꽃을 한 송이씩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당신은 이웃나라 임금에게 우리 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서장의 책상은 그날 꽃 더미로 묻혔다.
정부는 70년 제6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몹시 난처한 입장에 있다. 박 대통령은 제2차 5개년 계획의 조기 완성을 위해 서울개최를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제개발의 애정은 국민도 꼭 마찬가지다.
「1백억 이상」(서울시안) 「60억 이상」(건설부안) 의 호화판 준비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틀림없이 「비생산적 투자」이다.
고속도로가 뚫리고 「매머드·호텔」이 임립 해야만 「국위선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판잣집」이 너절하고, 도로가 불편해도, 「미래가 약속된 국가」의 모습만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가.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언필칭「아시아」제국 중에서도 최고인 13.4%라고 한다. 만일 경제개발의 힘찬 맥박을 과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모습은 충분하다.
「스포츠맨·쉽」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서울대회는 소박하게라도 예정대로 개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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