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4월의 봄이 노래하는 역설의 의미를 잊어서야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4월의 봄이 오면 꼭 인용되는 시가 있으니, 토머스 엘리엇의 ‘황무지’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이 자라고 추억과 정염이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 겨울이 차라리 따스했거니”로 시작하는 그 시 말이다. 이걸 얼마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취임사에서 인용하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대대적인 사정 수사를 암시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에서다. 하긴 그리 볼 법도 하다. 봄이 왔는데도 “겨울이 차라리 따스했거니”라고 노래해서다. 범죄자들이여 기다려라, 겨울이 따뜻하다고 생각되도록 만들어 줄 테니, 뭐 그런 의미가 아니겠느냐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시를 좀 더 들여다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황무지’는 원래 봄의 몰(沒)염치성을 노래한 시다. 봄철에 움과 싹이 새로 돋는 건 사실 봄의 공로가 아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 씨앗과 뿌리를 건사해 온 겨울의 기나긴 산고(産苦)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겨울의 공은 잊은 채 봄만 찬양하지 않는가. 우리가 잊어서 안 되는 건 바로 이 같은 역설(逆說)이다. 화려한 축제 뒤에 가려져 있는 잔인한 잉태의 역설, 봄이 간직한 그 비밀 말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사정과 수사가 대대적일수록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산고는 더 커진다는 걸. 보라. 국세청과 금융당국이 칼을 휘두르니 금고가 대량 판매되고, 은행에서 예금 인출이 급증하고, 금 판매가 크게 늘고, 5만원권 지폐가 태부족하다지 않는가. 돈이 은행이 아니라 금고와 장롱으로 몰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은행과 거래한 정보를 국세청에 통째로 넘겨준다니 설령 죄가 없어도 불안할 수밖에. 이자와 배당소득이 2000만원을 넘어서면 세금을 더 내야 하니 은행에 맡길 이유도 줄었기에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런 행태가 바람직하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이다.

 역설은 또 있다. 대기업이 아무리 적자를 보더라도 납품대금을 깎아선 안 된다는 법이 통과되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기업은 협력 업체와 장기 거래를 하지 않는다. 납품선은 국내가 아닌 해외로 돌릴 게 뻔하다. 중소기업을 돕겠다는 선의가 실제론 중소기업을 망가뜨리는 악의로 변한다는 거다. 그러니 법과 칼이 펼치는 화려한 축제는 대부분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2000여 년 전 전한(前漢)시대 비련의 여인이었던 왕소군의 한탄과 곧바로 연결된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이 아니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라는 회한 말이다. 축제 뒤에 가려진 산고의 역설을 기억하지 못하는 한 이 땅의 봄은 결코 봄일 수 없다. 특히 올 4월은 여러모로 더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진짜 봄이 오기를!

글=김영욱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