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외건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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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성엔지니어링이 1분기에 219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고 고백했다.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플랜트 현장에서 3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주에는 GS건설이 535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는 여진이 증시를 뒤흔들었다. 국내 건설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해외건설 비중이 큰 대형 업체들은 잘 버텨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 것이다. 시장의 불신은 플랜트·조선·태양광 등 대형 수주산업 전반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GS건설은 똑같이 “2009년 무렵 수주한 해외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원가율이 높아져 부실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시기에 중동 지역의 대형 공사를 집중 수주한 만큼 언제 해외건설의 숨겨진 부실폭탄이 터져 나올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한국 건설업체끼리 저가·덤핑 입찰이 판친다는 소문은 오래된 이야기다. 덤핑 입찰은 아니라 해도, 수주에서 완공까지 3~4년 걸리는 과정에서 발주처의 무리한 설계변경에 따른 원가상승이나 하도급업체의 부실 등이 겹치면서 밑지는 장사를 한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계는 극심한 침체에 빠진 국내 시장에서 눈을 돌려 한꺼번에 해외로 몰려나갔다. 풍부한 ‘오일 머니’를 겨냥해 ‘일단 따내고 보자’는 분위기가 판쳤다. 그렇게 무리하게 덤벼들었던 후유증이 이제야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외건설을 미운 오리 새끼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 우리의 소중한 전략산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해외건설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659억 달러로, 반도체(504억 달러)와 자동차(472억 달러) 수출보다 훨씬 많다. 이제라도 건설업계는 해외 수주를 외형 키우기에서 수익성 위주로 바꾸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해외 발주처들이 교묘히 부추기는 국내 업체 간의 출혈 경쟁은 자제해야 한다. 원가 계산과 공정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단순한 시공 위주에서, 설계-파이낸싱-시공에 이르는 고부가가치의 패키지형 수주에도 눈을 돌려야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해외 건설시장은 지금 엄청난 지각변동을 시작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남아·아프리카 등지에 새로운 건설·플랜트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또한 미국발(發) 셰일가스 혁명으로 전 세계의 건설·플랜트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 우리 건설업계는 40여 년간 해외 진출을 통해 착실하게 기술을 갈고 닦았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의 풍부한 자금력과 결합하면 세계 건설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우리의 해외 건설은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7위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2017년까지 해외건설을 1000억 달러 수준으로 키워 세계 5위로 올라서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꿈이다. 우리 건설업계가 이대로 무너져선 안 된다. 3~4년 전에 자초한 숨겨진 부실부터 과감히 털어내고, 내실을 갖춘 새로운 건설 강국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