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포퓰리즘 입법 … 국내기업 역차별" 반발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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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경제부총리는 16일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는 페어 플레이 하자는 것이지 정상적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은 아니다”며 경제 민주화 법안에 대해 속도조절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사진은 참석자들이 학생들의 카지노 실습 수업을 참관하는 모습이다. 앞줄 왼쪽부터 허창수 전경련회장, 현 부총리, 김기문 중기중앙회장. 뒷줄 왼쪽부터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김성룡 기자]

경제민주화 이슈가 새 정부 들어 정상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제도를 보완하고 잘못된 관행을 고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국회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기업인을 범죄자로 몰고 기업 활동의 근간을 흔드는 쪽으로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논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의혹의 입증을 기업에 부과하고 있다. 또 내부거래의 부당성 판단 요건을 완화하고, 총수가 부당 내부거래를 유도하거나 관여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계열사에서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되면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해 형사 처벌하는 ‘30% 룰’ 도입도 있다. <본지 4월 12일자 1면>

 이런 흐름을 지켜보던 대학교수들이 급기야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포퓰리즘적 경제민주화 입법의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50여 명의 대학교수가 참여하고 있는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성명서에서 “국회의원들의 입법 만능주의가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무리한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 만든 법부터 제대로 집행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인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국회에서 논의하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역시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대기업을 옥죄려 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협상하면서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소니·폴크스바겐 ·필립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주요 부품·소재·물류에서 계열사 간 거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거래를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해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거나 금지하는 국가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 계열사 간 거래를 규제하면 혜택이 해외 기업에 돌아가는 ‘국내 기업 역차별’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우려 때문에 오랫동안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였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경제민주화가 여야 핵심 이슈로 떠오르면서 공정위도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는 기업 활동의 독소조항이 될 수 있는 공정거래법·하도급법 강화법안이 대거 포함됐다.

 금융 당국도 경제민주화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6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금융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불공정거래 규제를 강화하고 분식회계를 근절하기 위해 법적·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은행·증권사·보험회사가 판매하는 펀드 중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 비중이 절반을 넘을 수 없다.

 국회 정무위가 본격적인 입법에 나서면서 경제민주화의 궤도는 더욱 이탈하기 시작했다. 공정위가 추진 중인 ‘경제력 집중 억제 위반’ 규정은 계열사와의 거래로 경제력이 집중되면 처벌한다는 것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며 전형적인 과잉 규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무위 상당수 의원은 경제민주화 입법의 포퓰리즘 분위기에 휩싸여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에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들도 내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며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조항들을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이태경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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