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천안이 가진 역사 특성은 변경성·반골성·혁신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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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천안학 강의를 했다. 천안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의 90%는 외지 학생들이다.

그들에게 천안이 지닌 세 가지 특성에 주목하라고 설명했다. 천안은 역사적으로 변경성, 반골성, 혁신성의 고장이었다.

첫째 천안을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동네’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렇지 않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치열하게 전쟁했던 삼국시대에 천안은 삼국의 변경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백제가 강성했을 때 천안은 백제땅이었다. 고구려가 팽창하자 고구려땅이 되었다. 그 후 신라가 팽창하자 이번에는 신라 땅이 되었다. 세력 판도의 변화에 따라 가장 불안한 땅이었다. 자고 나면 깃발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땅이었던 것이다.

약 250년이 지나 신라, 후고구려, 후백제로 다시 나뉘어 후삼국 시대가 되었다. 천안은 다시 후삼국의 변경에 속하게 되었다. 천안이란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이 변경지역에 통일의 전진기지로서 천안이라고 고을 이름을 부여하고 마침내 후삼국 통일을 이뤘다. 천안은 변경의 땅이었다.

 둘째 목천 사람들이 태조 왕건에 저항했다가 돈(頓), 마(馬), 상(尙), 우(于, 禹), 장(張)의 5성씨가 돼지, 코끼리, 소 등의 짐승의 이름으로 바꾸어 내리는 굴욕을 당했던 역사에서 나타난다.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일제가 이 땅을 강점했을 때 천안의 반골성은 입장, 천안읍내, 풍세, 병천의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로 나타났다. 천안은 반골성이 있는 고장이다.

 셋째 천안에서 실학의 원조인 한강 정구 선생이 있었다. 조선 실학자들은 한강 정구 선생의 제자들이다. 조선 실학자들은 사회를 개혁할 많은 생각들을 쏟아 냈다. 천안의 인물 홍대용은 청국에 사신으로 가서 가장 열심히 중국 지식인과 대화하며 공부한 학자 관리였다. 그는 천주교 신부들과도 교류했고 서양 천문학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

천주교에도 관심을 가졌다. 중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믿던 당시에 ‘지구는 둥글다’면서 어디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신분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안은 혁신가들의 고장이었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변경성, 반골성, 혁신성을 합치면 무엇이 되는지 아느냐. 변경성+반골성+혁신성의 합은 창조성이 아닌가. 누구나 다 하는 것 따라 하지 않고 휩쓸리고 떠밀려 다니지 않고, 자기 관점으로 사물을 새롭게 보며,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지금 있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새 판을 짠다.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그런 변경성, 반골성, 혁신성의 사람 아닌가. 만일 여러분이 천안이란 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 세가지 천안의 특성을 자기 것으로 하게 된다면 여러분의 삶은 도전과 놀라운 성취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천안에서 공부하게 된 것을 그런 계기로 만들라.”

얼마나 깊이 그 말을 받아 들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천안이 갖고 있는 변경성, 반골성, 혁신성을 살리면 창조적 문화의 메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3개의 대학이 모여 있는 천안이 창조성의 메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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