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다녀간 중국, 대북 특사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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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북한과 6자회담 재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중·일 3국 방문에서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자 중국 정부가 화답한 격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15일 “중국 외교부가 조심스럽게 대북 특사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며 “늦어도 2주 안에 어떤 형태로든 접촉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중국이 말하는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6자회담 재개”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래 중국과 북한의 고위급 회담은 중단된 상태다. 특히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문제에 있어 주도적 역할을 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를 꺼렸던 중국이 케리 장관 방문 직후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여 더욱 의미 깊다. 여기에는 케리 장관이 북한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가 적잖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케리 장관은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만 27년 동안 활동하며 협상과 타협을 몸으로 익혔다. 그에게는 대화를 중시하는 외교 DNA가 배어 있는 셈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대북 냉기류가 워싱턴에 팽배할 때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케리 장관은 “북한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2010년 7월 27일 의회 연설)고 주장하기도 했다.

 케리 장관의 이런 DNA는 취임 후 첫 한국·중국·일본 연쇄 방문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서울에서 1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난 뒤 “6자든 양자든 북한과 실질적인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선 14일 평화적인 방법을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합의한 뒤 “북한이 비핵화를 결정하면 (중국을 위협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도쿄로 자리를 옮긴 케리 장관의 발언은 더 진화됐다. 14일 오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회담한 뒤 “미국은 북한에 손을 내밀 준비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미국과 북한 간 직접대화를 언급한 셈이다. 북한이 “남측의 대화 제의는 교활한 술책”이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 뒤인 15일 오전에도 “우리의 선택은 협상이며, 지역의 평화를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언론들이 전쟁이란 주제에만 온통 초점을 맞추는 건 불행한 일”이라고도 했다.

 케리 장관의 움직임은 미국 내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은 그의 직접대화 제안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전임자인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보상도 협상도 없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론에 갇혀 대북 정책에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백악관과 국무부는 아직도 같은 틀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케리 장관의 ‘입’은 이미 전략적 인내라는 틀을 넘나들며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외교 DNA를 지닌 케리 장관의 승부수는 긴장이 고조되던 한반도 상황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선택이다.

  워싱턴·베이징=박승희·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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