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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통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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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통계는 대량 집단의 규칙성을 시사하는 과학이다. 규칙성이 없는 통계는 날개 없는 새와 같다. 은행의 경제통계가 만일 정확치 못하다면 수학교사가 99산도 제대로 못하는 꼴이다. 백원 권은 1백원이지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통화량이라는 뜻을 시정인은 잘 풀 수가 없다. 통화량은 화폐 민간보유고와 통화성 예금(요구불예금)을 합계한 것이다. 그것은 월말마다 계산된다.
가령 5월 30 일께 은행측이 어느 거래선에게 『선생님 굉장히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하고 이런 부탁을 한다고 가정하자. 『선생님 당좌 중에서 1억원을 잠시동안만 정기예금으로 돌려주셨으면 지독히 고맙겠습니다』 거래선은 은행 앞에서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물론 24시간 후 1억 원은 원대 복귀했다. 통계상 그 「1억 원」은 5월 통화량 속에서 제외된다. 지난 5월중 금융기관의 미결제 수표가 유독히 산적했던 것도 아리송하다. 작년 5월의 84억과 금년 5월의 1백62억은 두 배의 차이가 아닌가. 세입만 터놓고 세출을 잠시동안 막아도 통화량은 움츠러든다. 모두 합법이다.
총선이 있던 5월은 4월보다 1억 원이나 통화량이 줄었다. 통계상으로는 「청빈한 선거」를 치른 셈이다. 은행 지점장들이 대학 강당에서 「통화량 특강」을 했던 들 「데모」는 예방할 수 있을 뻔했다.
독일의 통계학자 「바게만」교수는 『통계는 통계학적으로 취급해야한다』고 말한다. 무슨 말이 그런가? 1인이 1백20일 걸려서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다면 12인이면 10일에, 1백20인이면 1일에, 9백60인이면 1시간에, 5만7천6백인이면 1분 안에, 3백54만6천명이면 1초안에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못하나 박는 시간도 1초보다는 길다. 『그것은 수학적이지 통계적은 아니다』고 「바게만」교수는 지적한다. 「수학적」인 통계는 고사하고 정치적이고, 화장적인 통계는 안될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언젠가 우리는 선진국민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인플레」속에서 경제안정을 구가하는 낭만적 시민이 될지도 모른다. 통계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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