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2류' 경제부총리는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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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47년 어느 날 트루먼 대통령은 경제자문위원회(CEA) 초대의장인 너스(Nourse)박사로부터 미국 경제에 관한 보고를 듣다가 머리가 띵해졌다. 박사가 사사건건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러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저런 문제점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보고가 끝나 보좌관하고만 남게 되자 트루먼은 "어디가서 팔이 하나만 달린 경제학자(one-armed economist)를 구해보게" 하며 농담 겸 탄식을 했다.

트루먼은 단순하고 직설적인 사람이다. 2차 세계대전을 빨리 끝내려고 일본에 원폭투하를 결정했고 한국전쟁의 영웅인 맥아더원수도 문민정부에 불복한다고 바로 목을 자른 단호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도 경제문제에 관한 한 성미를 죽이고 참을성을 보여 너스박사는 그 뒤로도 2년 이상 CEA 의장자리를 지켰다.

노무현 당선자도 경제부총리를 고르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리라 본다. 많은 후보자들이 '개혁이 필요하지만 안정도 중요하다' 든가 '분배는 개선돼야 하지만 성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화끈하게 한 방향만 고집하는 인사는 우선 듣기에는 시원하지만 균형감각이 없어 대형사고를 칠 위험이 있고, 자기에게만 맡겨주면 양쪽 모두를 동시에 달성하겠다고 떠벌리는 사람 또한 신뢰하기 어렵다. 경제문제 자체가 복잡한데다 경제학의 한계가 있어 양심적이고 겸손한 전문가라면 그런 주장을 펼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처럼 해외.국내의 경제사정이 모두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개혁성보다 경험이 많은 인사가 경제부총리로 선택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 중에는 3공.5공.YS.DJ정부를 거치면서 전광용의 '꺼삐딴 리'처럼 행동해온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풍자소설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친일파에서 친소파, 그리고는 친미파로 변신해가며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나름대로의 실력.경험.노력이 따랐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金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 출발을 모색하는 정부라면 경륜도 있으면서 때가 덜 묻은 인사부터 최대한 찾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학자출신이 바로 경제장관이 돼 성공할 가능성은 최근들어 매우 작아졌다. 공무원들의 경제지식이나 어학실력이 달렸을 때에는 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아래 위로 인정받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간 관료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한데다 외부인사에 대한 견제능력도 대단해져서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학자출신 장관들이 거의 실패하고 말았다.

학자들은 관계에 나오는 경우에도 바로 장관 자리보다 자문역할이나 수습기간을 갖는 자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당선자가 마음에 두고 있는 교수들 중 끝까지 고사하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사정과 자신의 적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공무원 출신 중에서 장관감을 찾는 경우라면 나이가 젊더라도 일류급으로 인정받는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현 정부는 지연을 앞세워 이류급 인사를 임명했다는 비난을 듣곤 한다.

공무원사회에서는 서로의 실력을 뻔히들 알고 있는데 재목이 아닌 사람이 큰 자리를 차지하다 보면 관계(官界) 선후배들은 물론이고 민간쪽에서도 당사자나 정부를 우습게 볼게다. 그렇게 되면 개혁은 고사하고 일상업무도 제대로 수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경제가 이처럼 어려울 때는 국민 다수가 수긍할 만한 인재를 경제부총리로 내세워 희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외팔이경제학자 '꺼삐딴 리' 백면서생 이류관리로서는 그런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