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뒷전 … 편가르기 늪에 빠진 진주의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진주의료원 폐업은 지난해 12월 취임한 홍준표 경남지사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구조조정의 한 부분이다. 홍 지사는 올 초 도립 남해대학과 거창대학을 통폐합하고 문화재단과 문화콘텐츠진흥원, 영상위원회를 문화예술진흥원으로 통합하겠다는 등의 구조조정 방침을 발표했다. 1조3488억원에 이르는 채무의 절반을 2017년 말까지 상환하는 등 도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였다. 이 속에 진주의료원 폐업이 포함된 것이다.

 통폐합 대상인 여러 공공기관 가운데 유독 진주의료원만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근본적 원인은 공공의료원 폐업이란 사안이 갖는 민감성에 있다.

 또 진보 성향의 노동계와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쟁점화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다 홍 지사가 연일 진주의료원 노조를 겨냥한 강성발언으로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홍 지사는 “강성노조의 해방구” “노조만 배 불리는 일을 하지 않겠다” “귀족노조” 등의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민주통합당 설훈 비상대책위원 등 3명은 8일 홍 지사를 만나 폐업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당 김용익 의원은 국회에서 폐업에 반발해 단식농성 중이다. 이와 달리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지난 7일 “공공의료를 후퇴시킨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국민께 소상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며 야권의 공세를 차단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의료계도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폐업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경남도 의사회는 진주의료원의 회생 불능을 이유로 폐업에 찬성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시작된 진주의료원 사태는 진영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는 13일 전국노동자대회, 18일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창원에서 잇따라 열어 연대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 진영은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나타났던 이른바 ‘희망버스’에 빗댄 ‘생명버스’를 동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처럼 폐업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진영 간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공공의료원 구조조정 문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실종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백근(44) 경상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폐업을 일단 철회하고 지역주민이 포함된 노사정 테이블을 구성해 공공의료의 본질, 수익성과 공공성을 어떻게 절충시키느냐에 초점을 맞춰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원=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