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52만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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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지·워싱턴」을 비롯한 많은 미국의 대통령들은 「데모크라시」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이 말을 공식적으로 쓴 것은 「윌슨」대통령이 처음이라 한다. 그 전에는 「데모크라시」대신 「공화제」라는 말을 썼다.
「데모크라시」가 중우정치의 어감을 지니기 때문이다. 「공화제」라 불러도 내용은 마찬가지. 민주정치는 본질적으로 중우정치와 통하는 것이다. 민주정치와 중우정치의 차이는 소수의 의견을 얼마만큼 존중하고 관용과 이해 및 타협의 정신이 어느 정도 인가하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5·3 선거에서 박 후보는 압도적 차이로 윤 후보를 누르고 재선되었다. 패배한 윤 후보는 5백52만표를 차지했다. 이 또한 막중한 의의를 가진 숫자다. 4백52만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살고 죽는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선거전을 돌이켜 보자. 윤 후보는 정보정치를 없애겠다고 했다. 박 후보는 미국 영국에도 정보기관은 있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미국의 정보기관이 미국의 국가적 위신을 얼마나 실추시켰던가. 개인의 사생활까지 공공연히 내사하고 있는 미국의 정보기관을 비판하는 소리가 미국은 물론 「자유세계」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민주주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하며 이 선은 아슬아슬한 것이다.
윤 후보는 월남에서 철병하겠다고 했다. 박 후보는 『심각한 고민 끝에 파병을 결정했으며 지금도 잘했다는 소신은 변함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변함없는 소신」이 동시에 앞으로의 정세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소신」이기도 하다고 믿고싶다. 윤 후보는 공화당 정부가 부패했다고 공격했다. 박 후보는 어느 정도의 부패를 인정 하나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덜하다고 했다. 「전보다 덜한 부패」는 앞으로 가장 중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가 부패해서는 경제개발이고 무엇이고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앞으로 4년간 우리를 다스릴 새 대통령에게 우리는 축복과 함께 4백52만의 의미를 잊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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