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높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을 아십니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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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강일구]

자살과 연관성이 높은 우울증이 한국인에게 많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밝혀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팀은 2009년부터 2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대만·싱가포르·태국 등 아시아 6개국 우울증 환자 547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자살위험도가 높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다른 민족(30.2%)보다 한국인(42.6%)에서 많이 나타났다. 또 같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 중에서도 한국인(1.5)은 자살 위험이 다른 민족(0.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기분 조절하는 뇌 기능 망가질 때 나타나

정신과에서 분류하는 우울증은 크게 네 가지다. ‘주요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 ‘기분 부전 장애’, ‘기분 순환 장애’다. 이 중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주요 우울증의 한 종류로 중증이다. 기분을 조절하는 뇌 내 시스템 이상 때문에 생긴다. 전홍진 교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흥분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증가해 충동성이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술을 마신 뒤 억제력이 떨어지고 충동성이 증가하는 것과 유사하다. 판단력·집중력 등의 인지 기능 저하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부정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외부 스트레스나 고통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요인에 의해 생긴다.

멜랑콜리아형은 일반 우울증과는 양상이 다르다. 전 교수는 “즐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심한 식욕 감퇴와 체중 감소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안절부절하지 못하거나 행동이 느려지기도 한다. 이 외에도 새벽 잠자리에서 일찍 깨고, 아침 시간대에 증상이 더 심해진다. 다른 우울증처럼 눈물을 흘리거나 슬픈 감정을 호소하는 경향이 적고, 표정 변화도 적어 주변에서 잘 눈치 채지 못한다.

잠을 이루지 못해 술이나 약물에 의존할 경우 자살위험도가 더 높아진다. 충동성과 초조·불안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음주 뒤 금단현상이 생기는 새벽 시간에 우울증 증세가 더 심해진다.

남성이 여성보다 위험 … 새벽 자살률 높아

우울증은 민족 간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전홍진 교수는 “삼성서울병원과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이 함께 양국의 6500명 이상 주요 우울증 환자를 연구했더니 한국인에게서 멜랑콜리아형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우울증이 생기면 체중이 빠지는 멜랑콜리아형이 많은 반면 미국인은 체중이 증가하는 비전형 우울증이 많다.

멜랑콜리아형은 일조량이 적은 나라에서 많이 생긴다. 특히 한국과 중국처럼 사계절의 변동이 큰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더 위험하다. 전 교수는 “남자는 여성보다 힘이 세고 술을 많이 마셔 자살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또 타인에게 충동·분노감을 보이는 사람은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 전 교수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이 자기와 관련돼 있다고 느끼는 관계 사고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멜랑콜리아형 5년 주기로 찾아와

멜랑콜리아형은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만으로 치료되기가 어렵다. 표정 변화가 없고, 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2주 이상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일찍 잠에서 깨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체중 감소가 나타난다면 전문가에게 의학적인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치료 초기엔 오히려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전 교수는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체 에너지만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치료 중에도 가족의 관심과 의료진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치료는 상담과 약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한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대략 5년을 주기로 한 번씩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전 교수는 “우울증은 한 번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완전히 좋아지지 않는다. 특별한 원인이 없어도 다시 찾아오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  우울증의 한 종류. 기분을 조절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흥분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증가해 충동성이 극대화된다. 판단력·집중력 등의 인지 기능 저하로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부정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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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선 기자 charity19@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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